예전에 유학생활 때 한인교회를 섬기면서 큐티했던 내용입니다
그때의 마음을 잊지 않고 그 마음 그대로 강북우리교회에서 사역하고자 글을 다시 올립니다.
이제는 부목사가 아니라 담임목사로서 그때의 결단과 결심을 지켜내야 하는데...
지난 3년의 목회를 하면서 교회를 새롭게 하고 싶다는 어쩌면 저의 욕심(?)이 성도님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는 않았나 돌아보고 회개하게 됩니다.
혹시 저의 미숙함에 마음이 아프셨던 성도님이 계시다면 정말 죄송하고 용서를 구합니다.
잘 하겠습니다. 부족한 목사를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
바울의 목회에서 배울 점: 소란을 해결하는 방법
행 21:17-26
내용요약: 드디어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은 야고보와 장로들에게 선교 여행에 관해 낱낱이 보고한다. 장로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후에 바울에게 유대 율법주의자들의 오해를 풀기 위한 일을 제안하다. 그것은 율법의 시행에 관한 것이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의 관점에서 율법의 시행이 사람을 정결케 하고 영향을 끼치는 것은 아니었지만 바울은 야고보와 교회 장로들이 요구하는데로 율법대로 행하였다.
교훈: 본문이 주는 교훈은 바울의 목회 리더쉽에 대한 것이다. 오늘 본문의 핵심은 새로운 사고와 닫힌 사고가 대립할 때, 믿음이 강한 자와 약한 자가 대립할 때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와 교훈을 준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반드시 해야 할 이유는 없었지만 하나님 나라의 유익을 위해 유대 율법주의자처럼 율법을 성실히 지키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그는 자신의 생각이 옳았지만 그것을 강요하기 위해 싸우거나 다투지 않은 것이다. 왜 그랬을까?
아마도 바울은 더 큰 목적, 더 큰 유익을 생각했을 것이다. 바울은 철저히 믿음이 연약한 자들을 그의 마음에 두고 그들을 존중하고 그들을 생각하였다. 이것이 바로 목자의 마음이요, 마음이 큰 자의 태도이다.
적용: 어제는 원로 목사님을 뵙고 왔다. 원로 목사님은 현 담임목사님의 목회 스타일에 대해서 마음이 편치 않으신 듯 했다. 한가지 예는 강단 사용에 있었다. 원로 목사님은 담임목사님께서 주일 예배 때 강단에 아무나 올라 오게 하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갖고 계셨다. 원로목사님은 강단은 하나님의 지성소와 같은 곳으로 생각하고 계셨다. 또한 원로목사님은 아들 장로님이 한참 어려우실 때 믿음과 기도로 헌물 한 나무 강대상을 담임목사님이 치우고 크리스탈 강대상으로 바꾼 것에 대해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계셨다.
담임목사님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현재의 강단 사용이 타당하고 적절한 것이다. 오늘날의 강단은 절대로 구약의 지성소와 같은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신학적으로도 담임목사님의 생각이 옳다. 하지만 여기에서 이 일로 인해 마음이 상하고 상처를 입은 연약한 자들이 교회에 있다는 사실이 오늘 바울의 예를 보면서 반드시 생각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다.
분명한 사실은 시대가 바뀌었고 바른 신학이 있기에 잘못된 것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바꿈에 있어서는 시간과 지혜와 설득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중요한 것은 복음이고 교회의 건강함에 있다. 강대상이 나무냐, 크리스탈이냐에 있지 않다. 또한 개혁과 변화가 성도들의 마음에 아픔과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점에서 급격한 변화와 개혁보다 중요한 것은 성도들의 마음이 다치지 않고 믿음이 약한 자들의 생각을 무조건 무시할 것이 아니라 그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면서 일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나는 담임목사가 됐을 때, 이런 류의 일을 만날 때, 약한 자들을 생각하고 이해하고 그들을 품고 시간을 가지고 설득하고 권면하며 그들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선한 방법을 강구하고 일을 진행하도록 해야겠다. 이것이 담임목사가 보여야 할 리더쉽이고 목회의 방법인 것이다.
주의 일은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빌립보서 2:14 )
선한목회를 성령님 인도하심따라 잘하시리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