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미국에서 공부할 때 동료 목사님과 그랜드캐년 노스림 트랙킹을 다녀와서 썼던 글입니다.
이번에 강북우리교회에 와서 첫 제자훈련을 수료하면서 그때 썼던 글이 생각이 나서 찾아서 다시 올려봅니다.
그랜드캐년 노스림 트랙킹과 제자훈련
참으로 힘든 여정이었다. 하지만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달은 귀한 시간이었다. 2009년 8월 9일 밤 9시, 나, 그리고 4분의 동료 목사님들 과 함께 기아 세도나 밴에 몸을 싣고 노스림을 향해 밤을 새며 달려갔다.
노중에 라면을 끓여 먹고- 이 맛은 끌여 먹어 본 자만 그 맛을 안다- 차 안에서 동이 터오는 것을 보며 목적지에 다 달았다.
<함께 함의 중요성을 깨달은 노스림 트랙킹: 제자훈련 과정의 새로운 중요성을 깨닫다>
둘째날 아침, 우리는 노스림- North Kaibab Trail을 했다. 정말 지금 다시 생각만 해도 내가 어떻게 그 트레일을 걸을 수 있었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정말 죽다가 살아난 힘든 트레일 이었다.
처음에는 정말 멋도 모르고 아래로, 또 아래로 내려가기만 했다. 그러나 그것이 나중에는 얼마나 큰 고통과 후회를 만들어 낼지를 내려가는 당시에는 정말 알지 못했다. 아침 7시30분쯤 내려가기 시작한 트레일은 오전 11시가 넘어서야 우리의 첫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었다.
첫 목적지에서 준비한 주먹밥을 먹고 휴식을 가진 뒤 12시가 되어서 우리는 다시 출발지였던 곳으로 올라가기를 시작했다. 평상시의 등산은 처음에는 힘들지만 나중에는 내려가는 길이라 그래도 쉽게 길을 갈 수 있지만, 그랜드캐년의 경우는 내려가는 길도 어렵지만 올라가는 길은 더더욱 어려웠다.
때는 햇볕이 쨍쨍 내려 쬐는 오후! 정말 숨이 콱콱 막히는 더위와, 가파른 급경사를 올라가야 하는 상황이, 심적인 부담을 한층 더 무겁게 하였다. 조금만 가도 금방 심장이 헉헉거리고, 터질 것만 같았다. 가도가도 끝이 보이지 않고 보이는 것은 꼬불 꼬불 계속 되는 급경사! 정말 지금 다시 생각만 해도 내가 그곳을 어떻게 다녀왔나 하는 의문과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만드는 고통이다.
정말 몇 번이고 포기하고 싶었다. 도저히 못올라 갈 것 같았다. 하지만 그곳을 올라갈 수 있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함께 함의 힘이었다. 함께 올라가는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뒷 쳐지는 나를 기다려주고 격려해주고 함께 해주는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멤버 중에는 나보도 훨씬 체력이 좋고, 산을 잘 타는 이도 있었다. 그를 따라가다 보면 내 체력은 금방 바닥이 나고 도저히 그를 따라갈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속도를 주장하지 않았다. 나의 속도를 맞춰주었다. 때론 기다려주고, 때론 나보다 뒤에서 따라와 주고, 이러한 배려와 도움이 있었기에, 체력이 월등히 좋지 못한 내가 그 힘든 트레일을 완수할 수 있었다.
나는 이 트레일을 경험하고 제자훈련의 과정을 생각해보았다. 제자훈련도 1년이라는 장기간에 걸친 고된 영적 여정의 트레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힘든 과정이기에 제자훈련을 하다보면 과정 중에 중도 포기하는 훈련생이 나오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모든 훈련생이 함께 훈련을 잘 마칠 수 있을까? 여기에는 훈련생 한 명 한 명을 보살펴 주고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는 가이드, 교역자가 필요하다. 교역자는 제자훈련의 모든 코스의 전과정을 아는 자야 한다. 그래서 그 과정에서 어떤 일이 생겨나고, 어떤 돌발상황이 벌어지는 예상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훈련생들이 지쳐 힘들어 할 때에는 무리하게 계속 훈련을 진행할 것이 아니라 휴식을 주고 적당히 쉬게 할 줄 아는 여유가 필요하다. 또한 때로는 무작정 쉬게 할 것이 아니라 좀더 힘을 낼 수 있도록 격려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것이 교역자의 역할이다.
훈련생들끼리는 서로 다른 상황과 처지를 고려하여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위해 자신의 것을 양보하고 내어 줄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다. 또한 약한 자는 자신의 약함을 핑계로 포기하고 낙오해서는 안되고 강한 자를 본받아 따라가기 위해 힘을 서야 한다. 이러한 서로를 배려하고 함께 하는 과정이 모두를 변화시키고 성령 안에서 새롭게 되는 새로운 삶을 깨닫고 누리게 하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문제가 무엇이고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보게 만들어 준다. 그리고 함께 힘든 순간을 지내왔기에 훈련생들 간에 끈끈한 전우애(?)를 갖게 만들어 준다. 이것이 제자훈련의 그 과정이 만들어 주는 유익이라 생각이 든다.
노스림 트레일을 하면서 다음 번 제자훈련을 한다면 조금은 힘든 등산을 제자반 훈련생들과 함께 하는 것도 유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과정이 제자훈련의 과정의 의미와 그 뜻을 깨닫게 해 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참 안식의 의미를 깨닫다>
트레일을 걷는 과정에서 가장 바라는 것은 빨리 최종 목적지에 다다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금방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따라서 걷는 과정에서 순간 순간 기다려지는 것은 휴식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 휴식은 잠시 잠깐일 뿐, 영원한 안식은 주지 못했다. 목적지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계속 올라가야 한다는 모든 심적 부담을 다 떨쳐버리고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이 세상에서 우리가 누리는 안식은 참된 안식이 아니라, 잠시 잠깐의 휴식일 뿐이다. 우리가 영원한 안식을 누리는 것은 바로 저 하늘, 주님이 계신 곳에서이다. 우리는 그 곳을 향해 가기 위해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이다. 힘들지만 우리에겐 반드시 도달할 그 종착지가 있다. 그곳에 다다르면 우리는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얼마나 기쁜가? 얼마나 소망이 되는가?
<참 구원의 의미를 깨닫다>
트레일을 하면서 정말 도저히 내 힘으로는 올라 갈 수 없는 순간이 있었다. 너무나 힘들어서,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그때 드는 생각은 누군가가 나를 저 위로 올려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램이었다.
그때 한 생각이 들었다. 이것이 구원이구나! 내가 도저히 할 수 없는 것, 이룰 수 없는 것을 내가 얻게 되는 것! 그것이 구원이라는 생각! 도저히 짊어지고 갈 수 없는 죄의 굴레를 나의 주님이 십자가에서 대신 지어 주시고 부활을 통해 나의 모든 죄를 해결하시고 나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주신 바로 그 사건! 그로 인해 내가 자유해지고 내 짐이 가벼워진 바로 그 사건! 그것이 바로 구원이었다.
<예배! 하나님의 임재를 꿈꾸다>
그랜드 캐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단지 미국인들만이 아니라 전세계에서 온 다양한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비싼 돈을 들여 비행기를 타고, 차를 타고, 힘들게 이곳에 왔다. 광활한 자연을 보기 위해서. 그들을 이곳으로 이끈 이유는 바로 이것이다. 그랜드캐년이 주는 자연의 광대함을 보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크리스챤이나 넌크리스챤이나 공통된 이곳에 오는 이유이다. 그런데 이 많은 사람들은 이 광대한 자연의 조각가는 바로 하나님이심을 알고는 있을까?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위대하심을 깨닫고 있을까? 정작 그 하나님은 깨닫지 못하고 그 하나님의 그림자인 그랜드캐년만을 보고 즐기는 모습이 내게는 왠지 씁쓸한 기분으로 다가왔다.
나는 이곳에 모인 사람들을 보면서 주일날 예배에 모이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았다. 주일날 예배에 모이는 사람들은 왜 교회로 나아오는 것일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힘들게 고생을 하면서 하나님이 만드신 이 자연을 보러 이곳으로 나오는데, 왜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정작 그 자연을 만드신 하나님이 계신 교회로는 모이지 않는 것일까? 생각해보니 참으로 재미있는 아이러니이다.
오늘날 교회는 이점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교회는 장엄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가이드들이 그랜드캐년의 장엄함을 보고 체험할 수 있도록 가장 멋지고 좋은 포인트로 인도해주는 것처럼, 오늘날 목회자들은 예배를 통해 사람들이 크신 하나님, 장엄하신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도록 예배의 포인트로 인도해주어야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하나님을 영혼의 눈으로 보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