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19:1~10 “예수 와 삭개오” (만나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다)
눅9:51 “예수께서 승천하실 기약이 차가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기로 굳게 결심하시고”
예수께서 승천 하시기위해서는(하나님아버지를 만나기 위해서는) 겪어야 하실 일이 남아 있었다
하나님아버지께서 아들이신 예수님께 주신사명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사명을 감당하실 때, 아버지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승천하실 수 있는 은혜를 입는 것이다
그 일이 무엇인가?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이다
그 일을 감당하시기 위해 그 일을 행할 사람들이 모여 있는
예루살렘 성으로 결심하고 들어 가시는 것이다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기 전에 “삭개오”를 만나는 사건을 통해서 나는 무엇을 볼 수 있는가?
세리 장 “삭개오”는 예수의 소문을 듣고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라”(잠8;17)
세리 장 “삭개오”는 예수의 소문을 듣고
삭게오는 세상에서 찾을 수 없는 그 무엇을 찾아
자신의 마음속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자신의 조상들이 믿었던 하나님에 대한 복음에 소식을 듣고(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기 원하는 간절한 소망으로
자신의 신체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뽕나무에 올라 가서라도 예수님을 만나기를 원했다
그런 삭개오 가 예수님을 만난 후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되는 은혜를 입었다
“예수께서 이르시 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식임 이로다”(19:9)
삭개오는 자신의 죄를 담당하실(십자가를 지고 가실) 예수님을 만난 것이다
그 만남의 축복이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되는 은혜를 입었다
나는 세상 삶속에서 마음에 행복으로 가득한 기쁨으로 충만한가?
무엇인가 잡은 듯한데 허전함이 있는가?
혹이라도 믿음안에서 성령 하나님으로 충만함 내 안에 충만함이 아니라
보이는 현상과 현실에서 사람을 통해서 기쁨을 누리고자 함은 없었는가?
나는 때때로 이러한 내 자신을 부인할 수 없음을 고백할 수밖에 없지 않는가?
이전에 있었던 기쁨도 감사함도 내 안에 충만하여
그 행위가 삶으로 나타나는 것이 눈에 보이게 줄어들고 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지 않는가?
내 안에 감사함도 그 사랑에 대한 갈급 함도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지 않는가?
예수님께서 여리고 성을 지나가실 때 수많은 무리들이 따랐으나
그 중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수님을 만난사람은 “삭개오” 한사람
그는 하나님의 나라에 백성이 되는 축복을 받지 않았는가?
지금 이순간도 하나님의 말씀 복음의 소식은 들려오고 있고 또 흘러내려가고 있다
내 마음속에 “삭개오”와 같은 간절함이 없기 때문에
내 마음속에 십자가의 은혜에 대한 감사함이 결여 되어있기 때문에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함이 아닌가?
“삭개오”는 자신의 직위, 직책, 권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오직 예수님을 만나기만을 원했던 “삭개오”
그에게 예수님은 찾아오셨고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났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게 된 것이 아닌가?
나는 나의 삶속에서 예수님을 만나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입술로는 주님과 동행함을 원한다고 하면서
실천으로 옮기지 못하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나는 내 삶속에서 내가 스스로 내 짐을 내려놓고 싶은 것이,
내가 기쁨으로 감당해야 할 나에 십자가 아니길 바라며
또한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믿음이 아니기를 내심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아버지~~ 하나님의 그 은혜와 사랑을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감사함으로 충만함으로 채우시사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는 믿음으로 충만하게 채워 주소서
부족한 종의 마음이 심령이 가난한자가 되여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하게 하시고
내 영혼이 깨어 그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영적 귀를 허락하시사
들려오는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의 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 멘 –
2022.4.4 김 성 하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쳐다보시고 이르시 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해야 하겠다 하시니”(눅1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