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8:12~16 “마음의 전쟁을 이기는 법”
12절 “그르므로 형재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 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3절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라”
14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죄로 말미암아 사망에 이르러 있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그리스도의 부활의 십자가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망에서 영생의 생명을 옮겨진 성도는 하나님 앞에 사랑에 빚을 진 자들이다
하나님의 그 사랑 그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성도는
곧 성령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성전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이다
그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그 날까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나님의 백성이 자신의 죄로 말미암아 사망아래 있을 때
그 사망이 율법아래 있어 정죄함을 받는 것이었으나…….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은
이제는 율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의 법 아래 있으니(롬6:14)
그 신앙의 양심의 법에 따라 살아가는 성도에게는 다시 정죄함이 없으니
구원의 은혜를 깨닫은 성도는 그 사랑 그 은혜에 감사하며
그 신앙의 양심에 법을 따라가는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본분이며 올바른 삶이 아닐까?
신앙에 양심을 따라 살아가고자 하는 삶속에서
옛 사람이 문득문득 살아나 육신의 욕망을 부추기는 삶의 현실에서
육신의 욕망을 따라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는 행위가…………
곧 이스라엘 백성이 출 애굽 하여 가나안으로 가는 동안
광야 생활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아니하며
육신의 종이 되여 그 영혼이 노예로 살았던 애굽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것과 같지 않는가?
그러나 육신의 몸을 담고 있는 영혼이
육신의 옷을 입고 인생여행을 하는 동안 그 영혼이 육신의 지배를 받을 것인가?
아니면 그 영혼이 참소망의 빛을 바라보고 육신의 욕망을 다스리며 살아갈 것인가?
이 문제를 가지고 마음에 시름이 있을 때, 어떤 결정을 할 것인가?
마음에 고민을 하는 사람은, 그래도 그 마음에 신앙에 양심이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닐까?
물고기가 ‘낙시’ 고리에 걸린 미끼를 물듯이
아무 생각 없이 그 미끼를 문다면 육신의 욕망의 덧에 걸려 넘어지는 것이 아닌가?
성도라면 자신의 인생길을 가는 동안 자신이 누구의 지배를 받고 살아가느냐?
아니~ 내가 누구의 백성이며 나에 영혼이 어디에 속해 있는가?
자신의 소속감을 먼저 분명하게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을 뜨고
자신의 현, 삶의 위치를 발견하고 냉정하게 분별할 수 있는 것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영이 깨어 있는 사람은, 자신이 육신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는지
아니면 신앙에 양심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지 고민하게 되지 않을까?
두 가지 형태의 삶의 길목에서
어느 길을 택하여 ‘가느냐’에 따라, 그 인생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 아닌가?
“육신을 다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에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로8:5,6)
하나님의 복음을 듣고, 구원의 은혜를 입은 사람은, 영생에 대한 소식을 들었으니
그 영혼이 깨어 있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성도는
이 (마음)싸움에서 (선한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확률이 높겠지만……….
하나님의 복음을 모르는 사람은 오직 육신의 욕망을 향한 바벨탑을 더 높이 쌓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영과 육의 싸움에서, 백전 백패 할 수밖에 없지 않는가?
복음의 소식을 듣지 못하고 믿음이 없는 사람은 이미 심판아래 있다는 결과가 아닌가?
복음의 소식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안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이
옛사람과 마음의 전쟁을 하고 있다는 것은
그 마음속에 성령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것이며
육신의 욕망과 참소망을 바라보는 영생의 기로에서 선택의 여지는
그 사람에 영혼이 하는 것이 아닌가?
이 것이 곧 그 마음에 영적 전쟁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육신의 안락함이나 우월함,
부귀와 명예, 세상에 보이는 것으로 영을 지배하고자는 세상의 공중권세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유혹하고 미혹하는 것은,
육신 원하는 것을 구하며 그것에 빠져 있을 때
그 틈을 노리고 들어오는 것이 마귀들의 전술이 아닌가?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의 은혜를 입은 성도는………..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세상 공중권세들에게 시험을 받을 때(막1:13) 천사들이 수종을 듬 같이
오늘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세상 공중권세들과 싸울 때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 하시고 보호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자는…..
깨어 있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때 …….
보이지 않는 손길로 인도하시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광야에서 사십일동안 아무것도 먹지 아니한 예수님에게 먹을 것을 가지고 유혹하는 세상 마귀….
“예수님께서 대답하시 되 기록하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아니라 하였느니라”(눅4:4)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 었더라”(창25:34)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과
잠시 육신의 배고픔을 참지 못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기는 ‘에서’의 모습에서 나는(우리들은) 무엇을 생각할 수 있나?
하나님의 본체 이신 예수님께서도
어려운 고난이 있을 때, 늘 깨어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예수님”의 모습과
잠시 자신의 육신에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조금의 생각이나 주저함이 없이 장자의 명분을 죽한그릇과 바꿔 버리는 “에서”
나는 이 대목에서 무엇을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나?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 자신을 낮추시고 아버지의 뜻을 따라 순종의 길을 갈 때
어떤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깨어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예수님의 모습과
아버지 ‘이삭’의 가르침을 받았으나,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에서’의 삶의 모습에서
나는 무엇을 생각할 수 있고 느낄 수 있나??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 된 나는
나는 일상의 삶속에서 육신의 욕망을 따라 육신이 추구하는 것을 따라가며
내 의지와 내 힘으로 열심을 다해 세상에서 무엇을 이루어 가며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인정받기를 원하고 있는가?
아니면 항상 깨어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을 받기 원하며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성도라고 말할 수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늘 깨어기도 하는 사람 아브라함과 같이
(롬4:18) “아브라함이 바랄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와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는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현상과 현실을 넘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나님의 사람들에게(성도들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축복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고, 예수님의 희생과 고귀한 사랑이 있지 않는가?
그 다음에는 구원의 은혜를 입은 성도가,
그 은혜와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마음의 그릇을
어떻게 준비를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아닐까? 생각을 해 본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으리라 나는 여호와라 하셨다 하라” (출4:8)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오직 마음을 감하게 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한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라”
“네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 하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함께하느니라, 하시니라”(수1:7~9)
하나님의 백성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
지도자 여호수아와 그 백성들에게 주시는 말씀이,
“지켜 행하면 형통하리라”는 이 말씀을 오늘 이세대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나에게(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듣고, 말씀의 거울 앞에 내 자신을 비추어 본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물어본다, 내가 살아가는 삶의 현실이
나에 삶이 형통할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하고, 주의 길을 따라가고 있는가?
(레20:22,23) “너희는 나의 모든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라
그리하여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거하게 하는 땅이 너희를 토하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내가 너희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의 풍속을 좇지 말라
그들이 이 모든 일을 행하므로 내가 그들을 가증히 여기노라”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의 은혜를 입은 성도가 이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축복은 성도들에게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에게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약속하시고
그냥 그 땅에 들어가서 살라고 하지 않았다
그 땅에 있는 죄악 된 것들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멸하고(정복하고) 쫓아내라 하셨다
그냥 하나님 앞에 주저앉아 자신이 원하는 것을 구하는 기도는 이율배반적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행동으로 옮겨 질 때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 속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먼저 죄악으로 가득했던 나에 마음 밭은 성령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기에 합당한가?))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며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 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마7:7,8)
성도가 하나님 앞에 구해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
육신의 욕망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구하고 찾아야 한다는 것일까?
성도가 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이 아닌가?
성도가 하나님의 뜻 안에 있을 수 있는 길을 찾아
하나님의 뜻 안에 있을 때(하나님의 은혜안에 있을 때)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에 피로 구속의 은혜를 입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그 자녀가 세상 삶속에서 어려운 곤경에 처해 있을 때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하늘에 지혜를 구할 때
그 난관을 해쳐 나 갈수 있는 지혜와, 그 길을 밝히 비춰 주시리라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여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잠30:5)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하나님의 은혜안에 있는 성도에게는
그 말씀이 곧 인도자가 되시고 보호자가 되신다는 말씀이 아닌가?
“믿음에 선한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하였도다”(딤전6:12)
“그들이 가장 선한자라도 가시 같고, 가장 정직한자라도 찔레 울타리보다 더하도다
그들의 파숫군 들의 날 곧 그들의 형벌의 날이 임하였으니
이제는 그들이 요란 하도다(미가7:4)
“오직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
나의 하나님이 나를 들으시리로다”(미가7:7)
성도가 세상 마귀와 싸워 이기는 방법은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그 무엇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길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길이다.
성령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가 육신의 욕망과 싸워 이기는 길은
그 영혼이 깨어 있어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갈 때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에 진리를 마음으로 믿고 그 복음을 따라갈 때
그 복음이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시는 하나님의 은혜안에 있게 하리라 믿습니다
(욥23:8~12)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편에서 일을 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편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내 발이 그의 걸음을 바로 따랐으며 내가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을 어기지 아니하고 일정한 음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
하나님아버지~~ 은혜와 사랑을 감사드립니다
육신의 옷을 입고 살아가는 동안 육신의 눈으로 바라볼 때
사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없고 사람의 마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난감한 일이 많으나
‘욥’의 기도와 같이 낙담하거나 낙심하지 아니하고
나를 구원하시고, 나를 의에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마음으로 믿고 입술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름같이”
보혜사 성령 하나님께서 나와 동행하심을 굳게 믿고
하늘에 지혜를 구하는 믿음의 종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 아 멘 –
2023/9/20 - 김 성 하 –
“그르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 지도다” (고후4: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