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3:14~18 믿음의 여정 8 (아브람이 헤브론으로 옮기다)
한 알에 씨앗이 땅에 떨어져 새싹이 나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기까지 과정을 생각하며
한 알에 씨앗을 키우고 열매를 얻기까지 혹독한 환경속에서
그 씨앗을 가슴에 품고 때를 따라 씨앗을 뿌리고 새싹이 움을 틀 때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리시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때까지
햇빛과 비를 주시며 보호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일까?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되기까지 과정도 이와 같은 섭리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아브람이 롯 을 떠나 보내기 전까지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시고
약속하신 축복의 말씀을 듣고 말씀에 순종하며 순종의 길을 걸어온 아브람이지만
순종의 길을 걸어가는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 같았으나
자신에게 자식이 없음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아브람은
자신의 마음속에 또 다른 하나의 복안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
이것은 곧 그 마음에 두마음이 있었다는 뜻이 아닌가?
아브람이 하란 을 떠날 때, 말씀하시기를
“너는 너희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 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 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12:1,2)
하나님의 말씀에는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 집을 떠나라 하였으나
아브람은 하나님의 말씀과는 다르게 조카 롯의 가족들과 동행하고 있지 않는가?
세겜 땅 상수리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다시 말씀하시는 하나님….
이때에 아브람에게 어떻게 하기를 지시하시는 말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아브람이 스스로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깨닫아 알기 원하시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또 그 곳에서 기근이 심할 때
하나님 앞에 물어가로 되 기도하지 아니하고
육신의 눈에 보이 것을 따라 애굽으로 내려갔던 행동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보다 자신의 생각이 앞서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애굽 땅에서 아브람이 곤경에 처했을 때에도
아브람을 탓하지 아니하시고 말없이 묵묵히 뒤에서
아브람의 가정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아브람이 하나님이 뜻을 깨닫아 알기까지 기다리시는 하나님 사랑이 아니었을까?
13:3.4 “그가 네게브에서 부터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며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장막을 쳤던 곳이에 이르러”
“그가 처음으로 제단을 쌍은 곳이라 그가 거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아브람이 애굽에서 돌아와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을 때 아브람은 이 말씀이 생각 났을까?
창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 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널 말미암아 복을 받을 것이라 하신지라”
그러나 13장 전반부에서 볼 때
아브람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이 서로 다툰다는 것은
아브람은 롯을 친 자식처럼 생각하고 있으나 롯의 생각은 다르다는 뜻이 아닐까?
롯이 아브람을 아버지처럼 생각했다면
아브람의 양도 자신의 양 같은 마음으로 처야 하지 않았을까?
롯을 떠나 보낼 때 아브람은 어버이 같은 마음으로 롯에게 먼전 선택권을 주었으나
롯이 마음에는 아브람을 어버이로 섬기며 따르는 마음이 아니라
롯은 자신이 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자신의 뜻을 이루어 간다는 차이점이 아니었을까?
이 대목에서 아브람의 생각과 롯 의 생각에 차이점에서 나는 무엇을 생각할 수 있나?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바라는 믿음과
아브람이 마음에 품고 있는 완전하지 못한 믿음의 차이점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대목에서 또 다른 믿음의 결과를 보게 된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아브람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아, 자신이 마음에 품은 것을 내려 놓았을 때
하나님의 말씀 따라 순종의 길, 생명의 길로 갔지만
롯 은 어버이의 뜻을 깨닫아 알지 못하고
자신의 욕망을 따라가는 길, 소돔과 고모라로 가는 길은 멸망의 길이 아니었는가?
그리고 아브람은 롯 을 떠나보내는 순간
아브람이 마음속에 품고 있었던 두 마음 중에 한 마음도 함께 내려 놓는 순간이며
하나님의 마음을,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그 마음을 아셨는지 다시 찾아오셔서
말씀하시는 말씀이 오늘 이 말씀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13: 14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 되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15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16 “내가 네 자손을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데 네 자손도 세리라
17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니 보라 내가 그것을 네 게 주리라
18 “이에 아브람이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더라
하나님의 마음은, 아브람!! 이제는 너에 생각을 내려 놓고, 내가 너에게 약속한
언약의 말씀을 믿고 나를 따르라 고, 확신을 주시는 말씀이 아니었을까?
아브람은 14장에서 롯이 여러 왕들에게 잡혀 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에도
롯 을 원망하거나 탓하지 아니하고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삼 백명 용사를 데리고 조카
롯을 구하러 달려 가는 아브람의 이 마음 또한, 어버이에 마음이 아니었을까?
롯을 구하여 돌려보낸 후, 돌아오는 길에
하나님의 제사장 멜기세덱 을 만났을 때, 아브람을 축복하는 멜기세덱………
14:19“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은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나는 아브람의 일대기를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의 마음속에 두마음이 있음을 알고 계셨으나
그를 탓하지 아니하시고 택한 백성을 묵묵히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의 섭리를, 아브람이
스스로 깨닫아 알기까지 때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게 됩니다
만 왕에 왕이시며 만주에 주가 되시는 하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온전히 섬기는 믿음이 될 때까지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
롯 도, 자신이 머무는 곳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다면 롯의 삶은 어떠했을까??
아브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번재로 드리고자 할 때
아브람의 마음속에, 자신의 생각은, 일 점, 일 획도 없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 따라 순종하는 아브람을 축복하시고
그의 이름을 “아브라함”이라(믿음의 조상이이라)명명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나의 믿음이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나를 구원하기위해 나를 부르시는 주님의 사랑을 잊지 않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따라가는 믿음이 내 안에 충만하다면
모든 삶에 우선순위가 하나님이 되어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내 일상의 삶속에서 아주 작은 일이 있을지라도
하나님 앞에 물어 가로되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기 원하는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하지 않았을까?
기도하는 마음으로 한발, 한발 세상으로 나아갈 때
성도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성령 하나님의 음성을 신앙에 양심의 음성으로 들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아브람이 믿음의 확신이 없을 때, 차기 대안으로 롯 을 마음에 품고 있었듯이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면서도, 자신의 생각을 마음에 품고
확신이 없는 믿음으로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고 있지는 않는가?
그런 마음의 소유자는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현상과 현실을 따라가는 믿음……….
이 믿음은 거듭나지 못한 믿음의 소유자가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아브람이 자신이 생각을 의지했던 모든 것을 내려 놓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주어지는 축복을 기억해 봅니다
성령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을 때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그랬고, 바울사도 도 다멕섹으로 가는 길에
부활의 주님을 만나지 못을 때도 그렇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나는 부활의 주님을 만났는가?
영문 밖에서 부르시는 성령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올 때
(신앙에 양심이 심금을 울릴 때)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현상과 현실을 떠나
말씀 따라 행동으로 옮기는 그 결단에 믿음은 나에(성도의) 몫이 아닌가?
우왕좌왕했던 아브람이 하나님의 뜻을 깨닫아 알고 주님을 따를 때
축복하시고 또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의 은혜로 성도 된, 우리들은 성경을 통해서 보고 듣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인 나는, 우리들은, 하나님 앞에 무엇을 구해야 할까?
내가 머무르고 있는 그 자리에서, 내 생각 내 기준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일하시고자 하심이 무엇인지 깨닫을 수 있는 지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하는 기도의 자리로 나아갈 때
성령 하나님의 인도 하심을 받을 수 있는 기도의 자리가 되리라 믿습니다
구약 시대,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왕정 시대를 지나, 인간 왕정 시대를 거쳐
신약시대에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들은
만인 제사장 시대를 살고 있는 것을 마음으로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가?
예수님의 영이 세상 모든 죄짐을 담당하시고 육신의 장막을 떠나는 순간
지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지고(마27:51)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인간 관계에 가로막힌 장막을 허무러시고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에 십자가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의 은혜를 입은 성도의 몸을 성전 삼고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신 주님…..
이제는 누구나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 아버지……….
만인 제사장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는(나는) 성도 자신이 제사장인 것을 인식하고
언제나 깨어기도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원하는 은혜를 구하고 있는가?
요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십자가 사랑을 믿는 믿음안에서
부활의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시고 보내주신 보혜사 성령 하나님께서
성도의 몸을 성전 삼고 함께 하신다는 말씀을 믿고 기도하는 성도는
본인이 제사장 직분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는 것을 생각할 때
더욱더 성결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말씀의 거을 앞에서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자복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경거 망동한 행위로 하나님 앞에 자신의 직분을 남용하는 행위는
자신의 죄를 자신이 먹고 마시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앞서기도 합니다
구약시대에 제사장이 성소에서 제사를 제사드릴 때.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사람의 생각이 개입될 때
일어난 일을 성경을 통해 보고 들었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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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7:7.8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러 그리하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열릴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마다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이 시대는 성도가 성령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때
성도의(나의) 몸을 성전삼고 함께 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 가고자 하심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전에도 없고 후에도 없을 영화를 누리고 살았던 솔로몬 왕이나,
하나님 앞에 기도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육신의 생명을 십 오 년이나
연장 받는 은혜를 누렸던 히스기야 왕이나
자신이 누리는 영화가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자리에 자신이 앉는 순간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보호하심이 떠나는 것을
우리는 말씀을 통해 보고 들었습니다
그르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안에 살아가는 성도는
주님께서 성도 된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깨닫아 알게 하시는 것을
하나님의 축복이라 생각하며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라 생각해봅니다
마6:33 “그런 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마21:22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 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아브람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뜻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해 본다, 나는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나에 믿음은 어디에 쯤에 머물러 있는 모습일까?
하나님아버지~~ 부족한 종이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때
자아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닫아 알기 원하는 믿음의 종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머무는 자리에서 범사에 감사하는 믿음으로
선한 청지기의 삶을 살아가는 믿음의 종이 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참소망의 삶이 무엇인지 깨닫아
감사하는 삶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 아멘 –
2026/4/23 - 김 성 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