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고치시다 (요한복음 9장)
날 때부터 맹인으로 살아온 사람과
날 때부터 영적 맹인으로 살아온 그들은 자신을 알고 있는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나
그 시대에 지도자들이라고 자부하는 그들이나
육신에 눈을 가지고 살아가면서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바르게 알지 못한다면 그것이 곧 맹인이 아닐까?
하나님 집에 거한다고 자부하는 그리스도인들이나
그 시대에 율법 학자들이나 바리세인들 공통점은 무어일까?
행위 구원이다
내가 모세율법을 지키고 행함으로 구원 받는 것으로 믿는 자 들과
오늘날 교회 안에서 거룩한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쓰임 받는 말씀에 순종하는 종이 아니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자신을 위해 하나님 앞에 구하고 믿는 사람들과 같지 않을까?
(우리속담에: 날 낳으시고 날 기르신 부모님께 감사해서 하는 효도와
부모님에 많은 유산을 바라고 효도하는 효도와 차이점은 무엇이 다를까?)
우리들은 쉽게 말을 할 것이다 후자는 못된 놈이라고
그러나 하나님 앞에 우리들에 모습이 후자에 모습에 더 가까움을 알고 있는가?
날 위해 십자에 달리시고 그 흘리신 보혈에 피 값으로
나를 구속하신 그 은혜를 생각한다면
우리들은 오직 그 은혜에 감사 할 뿐이어야 할 것이다.
천국 찬치 초청받은 자가
그 초청장이 무엇으로 쓴 것인지 유심히 본 일이 있었던가?
거기에는 예수님에 보혈 피로 쓴 보혈에 피가 묻어있는 초정장이다.
그 초청장을 들고
이제는 하나님나라 안에 들어와 있음을 우리들은 알고 있는가?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아들로써
보고 듣는 것은 다 갖기를 원하고 누리기를 원하면서면서
우리들은 그 아들로써 의무는 다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는 그 직책에 맞게 살 때 그 아들이 아닐까?
(대한민국 백성이 나라 법을 지킬 때 그 법에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것과 같이)
맹인에게 침으로 흙을 이겨 눈에 바르고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으라 하신다.
그 맹인은 자신이 맹인임을 알았기 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연못으로 더듬더듬 찾아가 씻었을 것이다
순종했기에 그는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되었다
우리들은 자신들이 맹인인줄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가?
맹인에게 하는 예수님에 행동이
자아에 눈을 가진 자들이 바라볼 때 황당한 일이다
(왕하5장) 문둥병이 걸려 소문을 듣고 찾아간 라만 장군을
선지자 엘리사가 영접하기는커녕 집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시종을 시켜 요단강에 한번 도 아니고 일곱 번을 씻으라 한다.
그 시대에 군대 장관이 이방나라에 선지자에게 모욕을 당하는 관경이다
신하에 간청으로 그 말씀에 순종할 때 그는 깨끗함을 받았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내 자아에 기준의 생각으로 바라볼 때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나 많을 수 있다
이 두 사건을 바라보면서 진정한 맹인은 누구인가?
자신에게 반문해 본다.
그 시대에 유대인들과 오늘을 살아가는 나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가?
나는 자신에게 반문을 해 본다
그들만이 유대인들만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자 하는가?
예수님을 십자가위 못 박을 때 그 자리에 서 있는 자들에 모습이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 모습이 무엇이 다르다고 자부 할 수 있는가?
내가 영적인 맹인이요
내가 아버지 유산을 바라고 효도하는 아들과 같은 삶은 아닌가?
차라리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 하시는(요한복음9:35~)
말씀에서 바리세인들에 모습에서 나 자신을 생각해 본다.
믿지 아니하는 이들 보다 못한 그들처럼
(마태복음23:12~ ) 천국 문 앞에 서서 자신도 들어가지 않고
남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시는 말씀처럼
그 말씀이 우리들에 하시는 말씀이 아니길 기도 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맹인이었던 사람이나
문둥병 걸린 라만 장군처럼
자아를 내려놓는 순종이 그들을 살린 것 같이
하나님 아버지 때로는 내 자아에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있다 할 찌라도
영적인 맹인이 아니라 깨어 기도 하는 종이 되어
영에 귀로 듣게 하시고 영안을 열어주시고 바라보게 하시며
순종할 수 있는 믿음에 종이 되게 하소서
부족한 종 주님을 사랑 합니다.
2017.2.5. - 김 성 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