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6:11~16 “십자가 만 자랑하라” (할례와 그리스도의 십자가)
12절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뿐이라”
롬2:25~27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 할례가 되느니라”
“그른 즉 무 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 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또한 본래 무 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않겠느냐”
롬3:3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 라”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에 피로 죄 씻음 받은 것을
믿는 믿음안에서 살아가는 성도가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와 사랑에 대한 감사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그 삶이 곧 올바른 성도의 삶이 아닐까?
그러한 성도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이 아닌가?
성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져 간다는 것은
그 성도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되는 삶 곧 전도의 삶이 아닐까?
겉 모습은 교회에 출입하는 성도인데,
즉 할례 받은 사람,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인데,
그 성도의 삶을 통해서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볼 수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없다면,
그 사람은 할례를 받은 사람 이지만 무 할례자가 같다는 말씀이 아닌가?
즉 겉모습은 할례를 받은 사람이지만
마음의 할례는 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닌가?
12절 “무릇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 자들이
억지로 너희에게 할례를 받게 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박해를 면하려 함뿐이라”
육체의 모양을 내려 하는(즉 육체의 행위할례를 받았으나)
겉 사람은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은혜안에 있는 듯 하나
그 마음에는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와 사랑은 망각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자신이 원하는 무엇을 이루기 위해, 얻기 위해
하나님을 믿는 믿음안에 있는 사람은 그 믿음이 고행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이 아닌가?
롬3:3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롬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 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니라”
마음에 할례가 없는 그 마음에
자신이 원하는 욕망은 가득한데
그 욕망을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리라 믿는 믿음으로 살면서
자신은 옛사람에 노예가 되여 전혀 변하지 않으면서…..
그 마음 그릇에는 탐심으로 가득한 죄악을 가지고 살면서……..
그 그릇에 하나님의 사랑을, 축복을 구하는 믿음은 참 이기적인 믿음이 아닐까?
마6:23 “그런 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나에(성도의) 주인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그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오셔서 나의 몸을 성전 삼고 함께 하시며
하나님의 자녀 된 나를(성도를) 의의에 길로 인도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안에 살아가는 성도는
믿음의 눈으로 지나온 삶…..
그 삶의 결과를 돌아보면 더욱더 감사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바울사도의 감사는
육신의 욕망을 따라가는 삶에서 벗어나,
하늘나라 소망을 바라보게 하신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그 믿음의 삶을 통해서
그 마음에 참 기쁨과 소망을 가지고 살아간 삶이 아닌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 된 나에 믿음은 어디에 머물러 있는가?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육신의 욕망이 이루어지는 만큼 기쁨을 누리며
그 만큼에 감사하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지는 않는가?
그렇다며 그 삶을 통해서 진정한 예수그리스도에 십자가 사랑은 나타날 수 없이
자기 만족에 머무는 예수,
자기 자신을 위한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자랑하는 것에 불과 할 것이 될 것이다
성도 된 내가 내 입술로 예수를 자랑하기에 앞서
성도 된 내가 살아가는 삶을 통해서
타인이 바라볼 때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 바라볼 수 있고, 느낄 수 있는 삶이
곧 그리스도의 산 증인이 되리라 믿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성도중에 직분을 가진 자는 더욱더 그러할 것이다
직분을 받은 자는 곧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명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성도의 삶이, 작은 믿음으로,
실천하고 실행하는 믿음으로, 하늘 소망을 바라보며
믿음의 길로, 구원에 길로 걸어 간다면 큰 축복이요 상급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나에 실수나 잘못으로 한영혼이 실족하거나 하나님을 떠나게 된다면
주님은 말씀하셨다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좋았으리라 하시지 않았는가?
그르므로 성도의 영혼은 늘 깨어 있어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삶이 되어야 되리라 믿습니다
그 길은 말씀묵상과 하나님과 소통하는 기도의 삶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는 나의 일상의 삶속에서 2006년경 큰 고난을 당하는 일이 있었다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헤쳐 나갈 길이 보이지 않았다
집사람은 신경이 쓰여, 탈모 현상에 이르기까지 이르렀다
나는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인데
온전하게 하나님 앞에 맡기고 하나님의 인도하심 대로 따르겠습니다 하는 믿음보다
주변을 돌아보며 도움에 손길을 찾아보았다
하나님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나에게 지혜를 주세요 라고 부르짖고 있었다
그런데 여느 때와 같이 하나님 앞에 기도 하기위해
늦은 밤 교회로 향하여 걸어가는 발걸음은 천근만근이었다
교회 기도실에 앉아 기도하는 가운데 문득 이 말씀이 떠 올랐다
누구든지 나를 건드리지 말라 나에게는 예수에 흔적이 있노라”
나는 뛸 듯이 기쁜 마음으로 집으로 달려와
집사람에게 여보 이 말씀이 어디에 있는 말씀이지 하고 물었다
집사람이 나를 이상하게 처다 보았다
집을 떠날 때와, 집으로 돌아온 나의 모습이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었다
나갈 때는 죽 상을 하고 나갔는데
두시간쯤 지난후에 내 모습은 생기가 돌았기 때문이었다
둘이서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말씀인데 고민을 하다
갈라디아서 6장 17절 말씀을 기억하게 되었다
“이후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롬5:8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자기에 사랑을 확증 하셨느니라”
여보 미안해 내가 참 바보였어 모든 일은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데
내가 세상사람 그것도 부처를 믿는 사람을 두려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묻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안에서 해결되기를 기다려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나의 몸을 성전 삼고 함께 하심을 믿는 믿음이 없었던 나에 연약함
임술로는 믿는다고 고백을 하는데
삶의 실전에서는 전혀 연결시키지 못하는 헛된 믿음의 소유자가
나 자신 이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부족한 가운데 족한 줄 알고 범사 감사하는 삶,
곧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믿음이 없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욥1:21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으로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시는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 지니라 하고
그후로 우리 부부에 기도는 변했다
우리는 욥에 고백을 생각하며
주신이도 이도 여호와 하나님 거두시는 이도 여호와 하나님
우리의 모든 삶이 하나님의 뜻 안에 있습니다 라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되었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마산요양소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병 고침을 받았을 때
의료진들이 참 기이한 현상이라고 하기도 했다
그 후 나는 뜻있는 몇 사람과 함께 죽어가는 중환들을 찾아다니며
누구도 싫어하는 봉사 활동을 하며 복음을 전할 때
나에게 새 생명을 주신이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충만할 때
주변사람들은 미쳤다 할지 몰라도 나는 기쁨으로 가득한 시간이 아니었든가?
우리가 처음 시작했을 때를 생각하자 하는 마음에서
내가 넘어야 할 언덕이라면
나의 몸을 성전 삼고 함께 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 넘어가 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겼다
지난일을 다 서술할 수 없지만
내 생각과는 다르게 이 일을 통하여
1998년경 교회일과 나 자신에 문제가
어느 한 분에게 엉켜 있을 때
내 모든 것을 내려 놓고 교회일을 우선적으로 해결하고자 할 때
성도들은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며 나를 믿지 않을 때
강단에 서서 내가 성도들 앞에 약속하기를 교회 문제가 해결되면
내 문제는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시라라 믿습니다 라고, 나도 모르게 고백을 했던 일이 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수년동안 법원에서 승소 판결 받은 것을
법원에 가서 연장신청도 포기하고 살아가는 가운데
우리 부부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을 통해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1988년에 있었던 그 일을 2006년 해결해 가심을
우리 부부는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사실을 기억하게 되었다
내 믿음이 연약 해져도 언제나 나를 부르시고 깨우시는 성령 하나님의 음성을
내가 육신의 욕망에 사로잡혀 달음질하고 살았기 때문에
내 곁에서 나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내가 듣지 못하고 보지 못했던 자신을 회개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육신의 욕망에 고난에 터널을 지나
영적으로 주님을 바라보게 하신 하나님 앞에 감사드리며……
그후로 하나님의 일에는 열정적으로 살아왔던 나날들을 회상해본다
그때 일은 원로목사님께서 나에 증인이시다
좋은 목사님(신실하신 주의 종을 만나) 함께 교회를 섬겼던 일들이 생각난다
주위에 사람들이 곁에서 누가 뭐라해도 나는 참 행복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한 시간들이었다
시73:28 “하나님께 가까이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 하리이다”
새로운 주의 종을 만나 하나님을 더욱더 깊이 알아가는 시간들 속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자신의 존재감을 생각해 본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나는 나의 자신의 존재감을 어떻게 알고 있는가?
예수그리스도의 흔적을 지닌 자로써 하나님의 의로운 병기로 살아가고 있는가?
나는 순종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순종의 미덕이 무엇일까? 생각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본다,
종은 자신의 뜻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뜻을 묻고 주인의 뜻을 따라 순종할 때
신실하신 주인은 좋은 길로, 의의길로, 인도하실 것을 확신하고 또 확신합니다,
신실한 종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행위보다
내 영혼에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종이 신실한 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신실한종의 삶은
자신의 입술로 자신을 자랑하기에 앞서
그 종의 삶을 통해서 예수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아버지 은혜와 사랑을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종이 육신의 옷을 벗는 그날까지
교만하지 않게 하시며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 그 크신 사랑에 날마다 감사하며 살게 하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 아멘-
2024/9/26 - 김 성 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