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요약] 참된 교회가 해야 할 일(1)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라 (베드로전서 2장 11-12절)
박요한 목사
<참된 교회의 본질 두 가지>
내부적 - 거짓 없이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
외부적 - 거룩한 제사장이 되는 것
베드로전서의 두 번째 큰 단락인 「2장 11절~3장 22절」은 참된 교회가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권면하는 내용으로 택함 받은 하나님의 왕 같은 제사장이 된 성도들이 세상 속에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실제적인 예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12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벧전 2:11-12) |
베드로전서 2장 11절과 12절은 실천적인 권면을 적용하는데 서론이라고 할 수 있는 원칙으로 첫 번째 11절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라> 두 번째 12절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내라>입니다.
<성도의 정체성 세 가지>
⓵택함 받은 ⓶나그네와 같은 ⓷흩어진 자들
베드로는 1장 1절에서 언급한 성도의 정체성을 다시 짚어줍니다. 11절에서는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성도의 정체성은 성도가 이 땅에 영원히 거주할 자가 아니며 최종 목적지에 도달해야 하는 사람의 개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셔서 도착한 그곳” “하나님의 보좌 그 우편 그곳” 성도의 최종 목적지입니다. 이 분명한 정체성을 가질 때 이 땅을 지나갈 때 이 땅에서 가지려는 마음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썩어지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산 소망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앞서가신 예수께서 도달한 그곳에 우리도 도달하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갈팡질팡 향방 없이 살아가지만 성도는 푯대를 향하여 달려갑니다.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빌립보서 3:14) |
성을 쌓은 가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신 그 길을 따라가기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 “육체의 정욕”을 제어해야 합니다. 육체의 정욕은 우리를 거류민, 나그네가 아닌 정착민으로 이 땅에 발목 잡히게 합니다. 그 예가 창세기 4장에 나오는 가인, 가인의 후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름 대신 자신들의 이름을 부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아닌 내 이름을 세우다가 인생이 끝나버립니다. 그들은 이 땅에 성을 쌓고 이름을 짓고 왕이 되어 살려합니다.
16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서 에덴 동쪽 놋 땅에 거주하더니 17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임신하여 에녹을 낳은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의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니라 (창세기 4:16-17) |
가인은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나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정착민이 되었습니다. 자신이 만든 성에 아들의 이름을 붙여줍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고 죄가 그의 삶 가운데 들어오자 두려움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죄를 범하면 두려움이 마음에 들이찹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이고 찾아온 두려움은 누군가 자기를 죽이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는 유리하는 자가 되어 두려움에 사로잡혀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가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불쌍하고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십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창세기 4:15)”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 우리들이 두려움에 쌓여 불행하게 사는 것을 하나님은 원치 않으십니다. 하지만 가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자신을 보호하는 성을 쌓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셋
25 아담이 다시 자기 아내와 동침하매 그가 아들을 낳아 그의 이름을 셋이라 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내게 가인이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 함이며 26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세기 4:25-26) |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합니다. 성을 쌓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제단을 쌓습니다. 창세기 5장 셋의 족보 속에 노아가 나옵니다. 세상이 물 심판을 받을 때 노아의 식구들만 방주를 타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곳으로 나아갑니다. 나그네의 삶을 살았던 노아의 식구들만 구원을 받았습니다. 성경은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도는 주님과 동행하며 나아가는 나그네인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이 세상의 전략입니다.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다스림, 성령의 지배, 성령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갈라디아서 5:16)”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의 사슬로부터 끊어주셨습니다. 더 이상 죄의 노예가 아닙니다. 죄에서 건져내주시고 새로운 신분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관계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질 무궁무진한 것을 바라보지 않고 옛날 죄 된 본성을 추억하고 돌아가려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고자하는 선하고 아름답고 풍성한 은혜들이 제대로 구현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몸을 신령한 하나님의 집으로 삼으셨습니다.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으로 만들어주셨습니다.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갈 5:19-21) |
바울은 예수님을 믿는 갈라디아 성도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고도 구원 받지 못하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내가 성령을 따르지 않고 이 세상에서 성을 쌓고 사는 삶이라면 정신을 차리고 하나님께 나아와야 합니다. 베드로가 말하는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여기서 영혼은 헬라어 Ψυχη(프쉬케)로 영혼, 호흡, 마음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 육체의 정욕이 쟁취하려고 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에서 하나님에 대한 생각들, 관심들이 사라지게 됩니다. 육신의 삶, 욕심을 따라 살게 됩니다.
왜 가룟 유다였을까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창세기 13:2)”
요한복음에서 가룟 유다가 보여준 그의 마음 밭은 돈궤를 맡은 자로 그의 마음 가운데 탐심이 항상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의 마음에 찔리는 말씀을 주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육체의 정욕을 그의 마음이 환영한 것입니다. 탐심의 마음이 내 마음 가운데 들어올 때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 끊어낼 수 있게 도와달라고 처리하지 않으면 내 마음의 빗장을 활짝 열어 놓습니다. 마음 관리가 제대로 안 되고 있습니다. 마음을 오가는 수만 가지 생각들을 방치합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사단이 건드리면 그냥 무너집니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잠언 4:23)”
마음을 지켜보세요. 그걸 가지고 방치하면 마음 문이 열리고 사단이 틈탑니다. 그것을 가지고 주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성령의 소욕과 육체의 정욕이 우리 마음을 정복하려고 전쟁을 합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갈라디아서 5:17)”
성령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겸손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더러운 마음 가운데 들어와서 결코 떠나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의 그 사랑과 하나님이 사랑이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함께하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매일매일 너희 안에서 너희와 교제하고 말씀을 나누고 은혜를 나누는 신령한 집이 되기를 원하셔서 성령을 넣어주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라디아서 5:24)”
나는 이제 예전의 내가 아니야,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롭게 만들어주신 자야. 나는 새로운 자야. 이것을 선포해야 합니다. 내가 주님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믿지 않으면 육체의 욕심을 방치합니다. 주님 안에서 기쁨과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말하는데도 여전히 육체의 정욕의 노예의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세상 것 때문에 마음 졸이고 두려워하며 힘겨워하면서 살아갑니다.
사도 바울이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6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7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8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9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골로새서 3:5-10) |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린도전서 15:31)”
끊임없이 바울 안에서도 육체의 정욕이 일어납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이 어떻게 하셨는지를 바라보며 선포합니다. 우리는 성령의 옷을 입었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셨습니다. 새롭게 거듭났습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시기 때문에 날마다 성령의 지배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태복음 6:33)” 주기도문에서 “나라가 임하시오며”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이 망가진 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 자들입니다.
제일 먼저 성령은 우리의 생각을 바꾸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로마서 10:17)” 들을 때 우리의 생각이 바뀝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와서 하나님의 생각을 읽고 매일매일 삶 속에서 하나님의 생각으로 충만해지면 성령께서 내 마음의 모든 육체의 정욕들을 내쫓으십니다. 하나님을 따라 삶을 삽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골로새서 3:16)”
하나님의 통치를 받기 위해서는 3가지를 실천해야 합니다.
1. 매일 나의 삶에서 말씀묵상과 기도의 시간이 있어야 한다.
2. 일상의 순간마다 성령님의 인도를 받는 훈련을 해야 한다.
3. 순종의 훈련을 해야 한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베드로전서 1:22)”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태복음 5:8)”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면 내 영혼의 눈이 열립니다. 바라기는 모든 성도님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삶에 놀라운 변화와 축복을 누리시는 모든 성도님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