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서 2장 11-17절
박요한 목사
거듭난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의 모임 “교회”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나그네로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삶을 살아야한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삶이란 성령의 지배를 받아 성령 충만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육체의 정욕을 이겨 이 땅에서 정착민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도록 성령의 인도를 따라 진리의 말씀을 순종하며 살아갈 때 우리 안에 참된 자유의 기쁨, 평강, 하나님이 주시는 자유함으로 충만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로마서 14:17) |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는 곳을 말합니다. 바로 “나”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임할 때 성령의 인도와 지도 안에서 의(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와 평강(내 삶의 평안함) 희락(기쁨)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 충만하게 될 때 하나님의 꿈(하나님의 뜻, 비전)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꿈과 비전을 품게 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사 성령의 능력으로 소망이 넘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로마서 15:13) |
능력을 받아 살면 삶이 변화됩니다. 예수를 닮아가도록 성령이 우리를 변화시킵니다. 성령의 열매가 우리 안에 생깁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라디아서 5:22-23) |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를 다 가지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나라와 비전을 품고 살아가면 능력을 주시는데 예수님을 닮은 이 모습들이 우리 안에서 생깁니다. 그래서 이 일이 되어지려면 성령의 지배,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22절 말씀을 암송하시기 바랍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베드로전서 1:22) |
성령의 지배를 받으려면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 영혼이 깨끗하게 됩니다. 영혼이 깨끗할 때 하나님이 보입니다. 하나님이 보이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께 모든 다스림과 모든 것을 맡길 수 있게 되어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태복음 5:8)”
하나님을 보게 될 때 기도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고린도후서 12:10) |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삶을 살 때 반드시 세상 속에 드러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을 성경은 “선교”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나의 삶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어느 곳에 있든지, 어느 곳에 보내지든지 그곳에서 모든 성도는 선교사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예외 없이 세상으로 보냄 받은 선교사들입니다.
예배하는 것은 세상으로 다시 보내지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받으므로 삶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삶을 통해 이 선교의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셨고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의 핏값으로 세우시는 이 교회를 위해 무얼 놓고 기도하셨을까요.
16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 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19 또 그들을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그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17장 16-21) |
하나님께서 먼저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맨 처음 제자들을 믿게 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들을 세상으로 보냅니다. 이제 그 세상이 하나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됩니다. 이 일을 누가 합니까. 저와 여러분들이 그 일을 해야 합니다. 모두가 사명자입니다. 하나님은 모두에게 기대를 가지고 계십니다. 교회에 모였을 때는 서로를 더 격려해주고 등 두드려주고 힘내라고 그런 다음에 세상으로 보내야 합니다.
베드로가 말합니다.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벧전 2:12)” 세상은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이방인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세상을 말합니다.
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행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17 선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악을 행함으로 고난 받는 것보다 나으니라 (벧전 3:16-17) |
반드시 부끄러움을 당하는 날이 옵니다.
20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벧전 2:20-21) |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 고난을 먼저 당하셨습니다. 그 길을 가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도가 고난을 참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을 행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본을 따르기 위해서입니다. 나중에 주님 앞에 섰을 때 내가 보여드릴 수 있는 한 가지 내가 참아낸 것 그것을 주님께서 그 어떤 것보다도 아름답게 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봐야합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내는 삶입니다.
사도행전 7장에서 스데반 집사님이 순교를 합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돌 맞아 죽으십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모함을 해서 동포들이 돌을 들고 스데반을 죽입니다. 스데반 집사님은 대항하지 않고 싸우지 않고 돌 맞아 죽으십니다. 바보스러운 행동을 하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늘을 향해 눈을 들어 보좌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봤습니다. 그 보좌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가 벌떡 일어나셔서 스데반을 사랑의 눈빛으로 보고 계십니다. 스데반 집사는 봤습니다. 스데반은 돌을 맞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눈에 안 들어왔습니다.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행 7:59-60)”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하신 모습을 스데반 집사님이 닮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나라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것을 본 기독교 역사에서 엄청난 일을 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모습을 볼 때는 기독교를 없애려고 혈안이 되어있던 청년이 있었는데 이 청년이 스데반 집사님의 모습을 봤습니다. 온 세계에 복음이 전파되는 일을 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스데반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때가 되었을 때 사도 바울을 통해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시고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드러나는 삶입니다.
여러분의 삶을 무시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는 한 가지를 보십니다. 태도. 하나님을 향해서 어떤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느냐. 중요한 것은 여러분이 먼저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순종함으로 기도함으로 반응하며 살아갈 때 여러분의 삶으로 엄청난 결과를 이루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부름 받은 하나님께 보내진 하나님의 영적인 선교사라는 의식으로 살아갈 때 세상을 살아갈 때 나의 정체성이 분명해집니다. 이것을 자꾸 잊어버리는 이유는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받지 않고 드러내는 삶을 살지 않으니까. 산 소망을 바라지도 않고 우리 안에서 종말론적인 신앙이 없어집니다. 세상에 대해서 이기질 못합니다. 이 세상이 커 보입니다. 이 세상은 결국 다 심판 받을 세상입니다.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벧전 2:12) |
오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누가 영광을 돌립니까. 교회입니까, 세상 사람들입니까. 세상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때에 교회를 향해서 칭찬하고 교회를 향해서 너희들이 진짜였구나. 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교회가 해야 할 일은 선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에 세상은 저와 여러분을 칭찬합니다. “하나님께서 오시는 날에 선한 일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마태복음 25:34-40) |
우리는 교회 일 따로 하나님 일 따로 세상 일 따로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십니다. 전제는 우리가 세상에 선교사로 보내진 자들입니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의 선교의 대상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 영광을 나타낼 대상들입니다. 그 한 사람 한 사람을 대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 선교입니다. 내 삶 자체가 전도지입니다. 이웃들과의 관계가 전도지입니다. 영국 복음주의 리더로 인정받은 팀 체스터 신학자가 베드로전서 말씀으로 쓴 책 <일상교회>에 전도와 관련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우리는 전도를 생각할 때 초청예배나 전도 프로그램, 노방 전도, 방문 전도를 먼저 떠올리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주민 자치 모임에 참석하는 것 반상회에 참석하는 것 사무실에서 일하는 것, 남편에게 밥을 차려주는 것 이것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초대교회 당시 선교사들을 거의 모른다. 선교는 주로 이름 없는 그리스도인들의 증거 곧 수없는 친절한 행동 가족과 친구의 유대관계 진지한 이웃들과의 대화에 의존했다. 전도는 전문가의 활동이 아니라 생활양식이었다.” 팀 체스터의 일상교회 중에서 |
삶의 전도와 선교를 위해서 여덟 가지 실천사항
1. 비(非)그리스도인들과 어울려 밥을 먹으라.
2. 운전하지 말고 걸으라.
3. 단골이 되라.
4. 비(非)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취미생활을 해라.
5. 동료에게 말을 걸라.
6. 지역행사에 참여하라.
7. 이웃을 섬겨라.
8. 이 모든 것을 예수님을 사랑함으로, 사람을 사랑함으로, 삶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드러내는 선교적 마음으로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