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전2:5)
너희 믿음이(하나님의 신뢰 안에 있는것) 사람의 지혜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마암아 이루지는 것을 말씀 하시는 것이 아닌가?
나의 삶의 현실이 예수그리스도의 증인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나 자신 하나 건수 하기도 감당하기 버거운 삶을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가?
왜 일까? 하나님을 믿는 믿음안에서 믿음에 이른 믿음이 아니라
내 지혜 내 자아로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믿음에(의에) 이르겠다는 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에(신뢰) 이를수 없으니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 아닌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것 같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시는 제자들과 같은 모습은 아닐까?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가?
그 은혜를 믿는 믿음이 충만한 자만이 누릴수 있는 행복은
무엇으로 그 행복(은혜=능력)을 쟁취할수 있고 누릴수 있는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안에 있는 것이다
즉 의인은(믿음의 성도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믿음에(하나님 의에) 이르게 하시는 예수그리스도을 믿는 믿음안에서(롬1:17)
하나님의 의에 이를수 있는 것을 확실하게 신뢰하는 믿음 안에서 누리는 평안이 아닌가?
왜~ 귀신들린 아들의 아버지는 주여 할수 있거든 내 아들을 고쳐달라 했을까?(막9:23)
소문으로 하나님의 권능을 행하신다는 예수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께서는 고칠수 있는 확신(믿음)가지고 예수님을 찾아 왔는데
그 전에 예수님의 제자들을 만나 아들에 병을 고쳐 주기를 원했으나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자신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 연약함으로(확신이 없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아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것을 바라본 아버지가
소문으로 듣고 확신했던 믿음이… 예수님의 권능을 의심하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그 아버지의 믿음이… 할수 있거든으로 변한 믿음이 된것이 아닌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에서 먼저된 자들의 믿음없는 행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소문을 듣고 예수를 믿고자 다가오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연약하게 하거나 하나님을 불신하게 하는 행위를 하고 있지는 않는가?
먼저 누구를 바라보고 교회로 향하고 있는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는 성도들을 통해서가 아닌가
그렇다면 성도들의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대목이 아닌가?
“롬6;12~14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어 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자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아래 있음이라”
그듭난 성도는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성도는)하나님의 의로운 병기이다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안에 있을 때 .
그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이 곧 전도의 삶이 되어야 할것이다
입술로는 예수그리스도를 증거 하고 있는데
그 삶의 모습에서 예수그리스도 영광이 없다는 것은
그는 예수를 믿되 자신이 만든, 자신이 필요한 예수를 믿는 것이 되는 것이 아닐까?
즉 그 믿음에는 구원이 없다고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요8:55)
나는 때로는 이런 생각을 했다
나는 무엇인가? 나는 그냥 로봇처럼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 놓으셨는데 나는 누리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때로는 자신이 멍청하게 느껴지며 내 자아를 찾고자 했을때도 있었다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 곧 깨닫게 되었다
내가 내 지혜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애쓰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이 은혜안에 깊이 들어가는 것이 었다
하나님의 은혜안에 깊이 들어갈 때
하나님의 그 사랑과 그은혜를 깊이 알아갈수록 감사에 감사가 더해질 때
내가 그은혜안에서 기쁨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 은혜안에서 살아갈 때
삶속에서 불안함이나 초초함이나 두려움이 찾아올 때
더 깊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게 되고, 그 사랑을 내가 느낄 때
내 마음깊은 곳에서는 뜨거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평안을 누리게 될때가 있었다
삶의 현장에서 순간순간 마다 내가 서있는 길목에서
보이는 현상에서 내가 무엇을 할수 있는 길을 찾을것인가?
아니면 내게 다가오는 두려움 불안함 초초함을
내안에 계시는 그분께 고백하고 그분을 의지 할것인가?
이것이, 이 기로의 선택의 믿음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믿음이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가?(롬1:17)
우리는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부르시는 성령님의 소리와
세상에서 보이는 현상과 현실에서 방황할 때
육신앞에 다가오는 두려움 때문에 성령님의 소리를 외면하거나 잊어버리지는 않는가?
내가 그 소리에 귀를 기울 때
그 음성은 더욱더 크게 들려올 것이며
그사랑과 그은혜가 나자신을 감싸고 있는 것을 느낄수 있을 것이다
혈루증 여인이 예수님의 뒤로 와서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지는 간절한 믿음(마9:20)
그 여인에게는 예수님에 대한 확신이 있는 믿음이 이었기 때문에 나음을 얻지 않았을까?
어린아이가 부모님의 말을 있는 그대로 믿는 것 같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이와 같이 의심없는 믿음이 있을때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으로 누릴수 있는 기쁨을 맞이할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런 경험을 한적이 있다
내가 삶의 현실에서 너무 힘들어 매일밤 하나님앞에 나아가 기도 하면서도
확신이 없어 하나님 나좀 도와 주세요, 나좀 도와 주세요 불안해 하면서도
돌아오는 말걸음은 가볍게 찬송을 부르며 집으로 돌아오곤 하였다
상대는 이방신을 믿는 사람이 었다
어느날 그 사람이 나에게 찾아왔어 이렇게 말을 했다
사장님 매일 교회가서 기도 하는줄로 알고있는데 제발 나 잘못되라고 기도 하지 마세요
어디가서 물어보면 사장님이 자꾸 나와요 했다……
그날 그시간 이후 교회에 하나님을 찾아갈 때
무거운 발걸음이 새털같이 가벼웠고 기도 시간이 기다려졌다
하나님 앞에 구하고도 믿지 못하는 나 자신에게 보여주셨던 하나님을 을 생각하면
나 자신이 얼마나 치졸한 믿음을 가지고 기도 하며 살고 있는지 생각할 때
내 자신이 부끄럽기 그지 없었다
그렇다 하여 지금 나 자신이 온전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힘들고 지칠 때
바울 사도에 이말씀을 나는 문득문득 떠올리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15:31)
바울사도가 날마다 무엇이 죽어야 했을까?
앞에서 나는 날마다 내 자아를 찾고자 했던 것을
바울사도는 그 자아가 죽기를 원하지 않았는가
육신에 욕망의 자아를 내려 놓을 때 진정한 내면속에 자아를 발견할수 있고
그 내면속에서 자아가 하나님의 은혜를 만날수 있지 않는가?
하나님의 은혜을 발견한 영혼은 그 삶이 성령 하나님의 인도 하심을 받는 삶이 아닐까?
그 삶을 곧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삶이 되며
그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는 삶이 아닐까?
나는 오늘도 자신에 반문해 본다 나는 은혜안에 살고 있는가?????
그렇게 자신에게 반문을 할 때.
내가 서있는 자리를 문득 바라보게 된다
보이는 현상과 현실에서 쫓고 쫒기며 살아가는 자신을………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수 없는니라 하시니라”(막9:23)
하나님과 함께 하지 않고 내 의지 내자아가 나타나면 할수 없음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묵상과 기도(성도 안에 거하시는 성령하나님과 대화)만이
능히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의로운 병기로 살아갈수 있다는 말씀이 아닌가?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로써
하나님의 의로운 병기로 살아갈수 있는 믿음이 복을 허락 하시사
내안에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믿음으로 순종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믿음으로 종으로 설수 있는 믿음의 복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 아멘 –
2020/10/31 - 김 성 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