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5:21~28 “가나안 여자의 믿음”
24절 하반절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외에는 다른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27~28절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서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데로 되리라 하시니
그때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가나안 여인이 잃어버린 하나님의 백성(양)이었을까????
예수그리스도의 소문을 듣고 예수님을 찾아온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소문만으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그렇다면 유대인 중에 유대인이요
히브리인이라고 자부하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 중에는
주인을 따르는 개만도 못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은 아닐까?
(예수의 소문을 듣고 다윗의자손 예수라고 부르는 이방인 보다 못하다는 말씀은 아닐까?)
오늘 이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소문을 듣고
그 마음에 간절함은 있는데 성전안으로 들어 오지 못하거나 들어오지 않는 사람들은 없을까?
직접적으로 교회안으로 들어와 주의 종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하였다 할지라도
예수의 소문을 듣고 그 마음에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한다면
그 사람은 누구를 통해서 예수의 소문을 들었을까?
누군지는 모르지만 신실한 성도의 삶을 통해서 예수님을 바라보지 않았을까?
그 성도의 삶을 보고 예수님의 사랑을 보았고
그 사랑을(예수님의 사랑) 간절히 소망한다면
그 사람은 구원 받은 사람 일까? 구원 받지 못한 사람 일까?
그러한 사람이 교회 안으로 들어 올수 있는 문을 우리는 완전히 개방했다고 말할수 있을까?
예수그리스도의 소문을 전하는 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몫이요 의무라면
그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것은 또한 그들의 몫이 아닐까? ,
그러나 그 다음 가장 중요한 것을 우리는 잊어버리고 있지는않는가?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가나안의 여인의 간절함을 보고도
하나의 형식으로 치부하며 귀찮아 하는 모습을 볼 때 우리들은 무엇을 느낄수 있나?
오늘날 한국 교회가 밖에 나가서는 거룩하게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전하고 있는데
남루한 모습으로 교회로 찾아오는 사람을 환대하고 있는가?
아니면 처음에는 환대하는 듯 하다가 그냥 그대로 방치하고 있지는 않는가?
자신들만의 성을 만들고 그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듯한 모습을 하거나
또 그들만의 하나님으로 생각하며 거룩한 척 할때
예수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이 상처를 받고 떠나는 것을 볼수 있지않는가?
자신들이 세웟고, 자신들이 지켜왔고, 자신들이 앉아서 예배드리는 장소
거룩하게 구별된 장소로 생각하고 있다면 그곳에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실까?
누가복음15장 (“잃은 양을 찾는 목자의 비유”)중에
4절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백마리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마리를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 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나는 그 가나안 여인을 이렇게 생각해 본다
병들어 남루한 모습으로 아버지를 찾아 왔는데
그 형제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귀찮아 무엇이라도 주어 내어 보내려 할 때
그 여인이 소리질어 아버지께 아버지 내가 왔습니다 하고
아버지가 자신의 목소리을 듣고 자신을 알아볼때까지 울부짖는 모습이 아닌가?
그 딸을 알아본 아버지는 (그 양을 알아본 예수님께서는)
(그 딸에게, 가나안 여인에게) 네 믿음이 크도다 네 믿음데로 될지어다 하시지 않았는가?
그날에~~? 우리들에 인생길을 다간후에 하나님앞에 섰을 때 누가 하나님의 양일까?
성전은 이세상에서 사람들이 세운 사람에 집이 아니라
구원 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집을 지은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만인이 기도하는 집이라 하시지 않았는가?
성전안에서 예수님과 함께 한상에 둘러 앉아 아버지의 말씀을 먹고 마시며
자유롭게 살아 가면서 하나님의 은혜안에 있는 것을 특권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가?
세상에서 지친 영혼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갈급한 심정으로 생명 샘물을 찾아오는 영혼들이 있다면
이시대에 성령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그 영혼을 부탁하며 그 양을 배불리 먹이라 하실까?
그 영혼을 살찌우고 평안하게 하라 하실까?
교회는 교회안에 먼저 된자라고 자부하는 자들이
교회로 찾아오는 치친 영혼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 양들에게 최선을 다 해야하지 않을까?
요한복음21:15~16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고
왜? 세번씩이나 되풀이 하고 또 강조 하며 물어 보셨을까?
시몬은 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누구보다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자부하며
또한 예수님에게 신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엇을까?
그 질문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 각자에게 하시는 말씀이라 생각해 볼 때
우리들은 그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자부 할수 있을까?
마15:7~9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 하였도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게 경배하는 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이 말씀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하시는 말씀은 아닐까?
서서로에게 반문하며 깊이 생각해 볼문제가 아닐까?
왜? 주님께서 먼저된 자가 나중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된다 하셨을까?(마태19:30)
자기중심에 빠져 교회안에서 주인행세를 하며 교만한 자를 두고 하시는 말씀은 아닐까?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구원받은 성도가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마음을 닮기 원한다면
예수님처럼 가장 낮은 곳에서 섬김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서서로가 자랑하지 말고
그 사람의 행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에게 존경 받을수 있는 삶
그 삶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자의 삶이며 성령에 열매가 있는 삶이 아닐까?
나는 오늘 이 말씀을 묵상 하면서
나에게는 하나님의 그사랑 그 은혜가 마음속 깊은 곳에 우러나오는 감사가 있는가?
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낮은 곳에서 섬기기를 즐거워하고 있었는가?
나의 삶이 하나님보시기에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구별되게 거룩하게 섬기며 대접받기를 원하고 있었는가?
자신에게 반문해 본다……
하나님아버지~~
이부족한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안에 살아가면서
그 은혜가 너무나 당연한것으로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았습니까?
이 죄인에게 성령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그 음성이 들려올 때 깨달을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시사
순종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믿음의 삶이 되게 인도 하여 주시옵소서
말씀묵상과 깨어 기도하며
하나님말씀 앞에서 자신을 발견할수 있는 믿음의 종이 되게 인도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멘 –
2020/11/25 - 김 성 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