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8:11~20 여호와를 기억하라 (“여호와를 잊지말라”)
20절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멸망시킨 민족들 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하지 아니함이니라”
출6:8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하셨다 하라”
추수감사절, 한해의 삶을 뒤 돌아보면서 때를 따라 이른비와 늦은 비를 주시고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며 하나님앞에 감사드리는 절기이다(수장절, 초막절)
히브리민족이 출애굽하여 광야를 거쳐 가나안에 들어가 살아가는 삶을
나는 나의 일상에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따라가는 나의 삶을 접목해보며 자신을 바라본다
애굽에 있을 때 히브리민족이
자신의 조상들이 섬겼던 하나님이 유일신이신 것을 깨달아 알고
부르짖어 기도 할 때 모습이
애벌레가 어둠에서 눈을 뜨고 세상 빛을 본것 같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기 위해 눈을 뜨는 사람과 같은 모습이었다면
광야에 들어가기 전에 홍해를 만나 위대하신 하나님을 바라 보게된 히브리민족……
그 광경에서 주눅이 들었을까?
그 위대하신 하나님을 자신들의 하나님이라 생각하며 감격에 젖어 감사하는 삶을 살았을까?
(나는 나 자신에게 반문해 본다
내가 신유의 은사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살았을까?
때로는 두려운 하나님으로 생각하며 살았을까????)
그들이 애굽에서 종으로 살아 갈때, 바로왕이 시키는 일만하면…..
영적인 자유가 없었으나 의식주는 그런대로 해결을 하며 살았지만
(애굽의 삶이 영혼없는 대답, 영혼 없는 노동, 영혼이 없는 맹종의 삶이 아니었을까?)
광야 생활은 육체의 자유는 얻은듯 하나
세상을 향해 굳을 때로 굳어 버린 그 영혼들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결코 녹녹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해 본다
하나님께서는 광야 생활에서
그들에게 영적인 눈을 뜨게 하시고 분별력을 주셨어
그들에게 창조주(절대자)가 누구인지 깨달아 알게 하시고
생각의 자유와, 행함의 자유를 주시고 세상은 인간의 통치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는 것을 깨닫게 하시는 과정이 광야 생활이 아니었는가?
그들이 하나님이 누구시며 그들의 조상이 누구인지 분별력이 있고 깨달음이 있을 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약속의땅
젓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 하시겠다고 약속하시고
그들에게 육신의 욕망을 추구하는 맹종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그들에게 영원히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시지 않았는가?
그러나 그 새로운 땅을 그들에게 주시되 그냥 주시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너희을 애굽에서 구원해낸 하나님이며
광야에서 너희를 지키고 보호한 너희 하나님이라…..
너희가 약속의 땅을 정복할 때 지금까지 함께 하셨던 내가 함께하리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준 그 땅에서 정복하고 살아갈 때
내가 너희에게 맹세하게 하고 약속한 내말을 지켜행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를 도우리라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민13장~14장)그러나 가나안에 들어가려는 순간부터
구원 받은 백성들 중에서 열두지파에서 대표를 뽑혀 정탐을 갔던 사람들 가운데
여호수아와(에브라임 지파) 갈렙(유다 지파)을 제외하고는
광야를 지나오면서 함께 하셨던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망각하지 않았는가?
그 결과 일세대가 죽을때까지 다시 광야를 돌리면서 훈육하셨던 하나님……..
하나님을 믿고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 가운데는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에 가만히 있어도 모든것을 해결해 주시는 하나님으로 알았을까?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 하심가운데 가나안을 정복하고 취해야 하듯이
구원 받은 성도는 성령하나님과 함께 세상과 싸워 이기며
구원의 역사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정복하는 것이다, 영적 전쟁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현실은 어디쯤에 머무르고 있을까?
광야를 그쳐 가나안에 들어 갔는가?
아니면 뒤돌아서 다시 광야 속으로 다시 들어가 훈육을 받고 있는가?
믿음 생할중에 광야시절이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자 탐구하고 깨달아가는 시간이라면
가나안의 삶은 성숙한 믿음으로 세상을 정복해야 할 성인된 믿음의 삶이 아닐까?
오늘를 살아가는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약속의 땅 가나안은 어디에 있을까?
세상 죄악으로 가득하여 하나님을 모르고
세상법(육신에 욕망의 법)에 노예가 되여 살아가는 삶이, 애굽의 종살이 였다면
하나님의 복음을 믿고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렀다면
그 구원의 역사를 알기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알아가는 과정이 광야 생활 이었다면 …
광야 생활에서 하나님의 인도 하심과 보호 하심을 깨달아 알았다면….
오늘의 살아가는 삶이 가나안의 삶이라 생각할 때
그 삶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 은혜에 감사 함으로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것이 아닌가?
그 지나온 광야을 지나 이스라엘이(하나님의 백성이) 가나안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 했을까?
가나안에서 살아가는 그들의 삶이 처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세상 죄악으로 가득한 가나안을 정복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갔는가?
아니면 그들은 그들의 삶속에서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저녁에 어둠이 소리 없이 찾아오듯….
하나님의 법을 떠나 육신의 욕망의 법(세상법)을 사랑하게 되고
그 속에서 안주 하며 하나님을 백성으로 살아가는 듯하나
하나님보시기에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신을 쫓아가는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일깨우기 위해 하신일이 무엇인가
수많은 선지자를 보내시고 이방민족을 들어 회초리를 드시기도 하였으나
하나님보시기에 좋은대로가 아니라, 육신이 보기좋은대로 따라가지 않았는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 모습에서 겉과 속이 다른 모습이 되여
지탄을 받고 있으나 정작 본인들은 모르고 있으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 온다 하더라도
자기 합리화의 길을 모색하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았는가?
그 모습이 현제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에 모습은 아닐까? 자문해볼 문제는 아닐까?
나는 또 이렇게 생각해 본다
광야에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찾아오셨어
그들을 일깨우시고 보호하시며 인도 하셨던 하나님 이시라면
가나안의 삶속의 하나님은 그들이 부르짖어 기도 할 때 응답하셨던 하나님이라 생각해 본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광야같은 믿음이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 나를 찾으시고 부르시고 깨우쳐 주셨다면…….
이제는 구원 받은 성도가 가나안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면
우리들에 몸을 성전 삼고 함께 하시는 성령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 하며
성령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원하며
그 음성이 들여 올 때 순종의 삶을 살아가는것이 성도의 삶이라 생각해 본다
그 영이 깨어 있다면, 하나님의 법을 옳바르게 인식할수 있겠으나
그 영혼이 잠들어 있을 때, 세상법을 따라, 육신의 안락함을 더 추구하지 않을까?
특히 구원 받은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자신의 안락함을 추구한다면,
자신의 육신에 영달을 위해 달려 간다면 그 끝은 어디가될까?
요한복음21:15~16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가로되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 하는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가라사대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오늘 이시대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이 말씀을 주님께서 하신다면 그들에게 맡겨진 어린양은 누구일까?
울타리안에 있는 양이 주님의 양일까, 울타리 밖에 있는 염소가 하나님의 양일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눅11:28)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안에 있는줄을 아노라” (요일2:5)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자, 곧 믿음안에 있는자,
성령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자가 곧 하나님의 양이 아닌가?
출6:8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하셨다 하라”
지금 우리들이 살아가는 이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져가는 과정이라면
이 땅에서 한해를 살아온 삶을 뒤돌아 본다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무엇을 정복했고 어디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웠는가?
오늘 이 감사절에 우리는 무엇을 하나님앞에 내어 놓고 감사예배를 드리고 있는가?
한해의 삶 가운데 하나님앞에 무엇을 들고 나왔는가?
한해를 무사히 살아옴에 하나님앞에 감사하여
이웃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신을 들어내고자 하지는 않았는가?
아니면 한해동안 살아온 그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들어나서
세상 이웃을 복음의 빛 가운데로 인도 하는 모습이 우리들에게 있었는가?
자신의 삶을 통해서 생명 샘물이 어디로 어떻게 흘러 갔다고 생각하고 있는가?
그 생명 샘물이 흘러 갔다면 그 열매는 무엇으로 나타나야 할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령의 열매는 자신을 위한 열매 였을까?(갈5:22.23)
그 성령의 열매로 말미암아 그 삶이 변화 되고
그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그 성령의 열매로 충만하지 않는 곳에는
자신의 자아에 갇혀, 우물안 개구처럼 자신의 바벨탑을 쌓기에 급급하고
또한 자신을 지키기에 급급했던 한해의 삶은 아니었는가?
구원 받은 성도의 삶속에 성령의 열매가 충만한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져야 하고
그 삶속으로 세상이(이방 사람들) 들어와 변화 받게 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추수 감사절 ?????
나에 삶속에서 진정한 추수 감사절은 언제가 될까? 자신에게 반문해 본다.
주님앞에 서는 날이 나에 인생에 진정한 추수 감사절이 되지 않을까?
구원 받은 성도가 새 마포를 입고 이웃을 섬기는곳에
하나님의 사랑이나, 진정성이 없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신을 나타내는 행위였다면
그 상급은 이미 받은 상급이 되지 않았을까?
구원받은 성도는 새마포를 입고 빛되게 소금되게 살아갈 때
세상이 그 빛을 보고 하나님의 은혜안으로(교회안으로) 들어오게 하는 삶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삶이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가는 삶이 아닐까?
“내가 너희 열조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하여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에스겔36:28)
구원 받은 성도가 하나님의 은혜안에 있음은, 가나안을 정복해 나가는 삶이며,
그 삶이 곧 하나님의 나라안에 삶이며,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며 살아가는 삶이 아닌가?
“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 (신명기8:1)
나는 나의 삶을 뒤돌아 볼 때
자신이 가나안에 있는가 하면, 때로는 광에서 머물러 있어
투정만 가득한 어린아이 같은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그래서 그 구원의 역사는 현제 진행형이며
더욱더 하나님을 더 알기원하며 하나님의 은혜안으로 들어 갈 때
자신의 존재가 티끌같고 지나가는 개미 한마리 존재보다도 미약한 자신를 바라보게 된다
한해를 살아온 나에게 추수감사절은 은혜에 감사하는 절기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삶을 하나님앞에 내어 놓고 점검하는 시간으로 생각해 볼때
내 인생의 그날에 주님께서 내 삶을 추수하시겠다 하시면
나는 어떤 모습 어떤 마음으로 주님 앞에 설수 있을까?
자신에게 물어 본다……………..
하나님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들을 때 율법에 메인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그 사랑 그은혜에 은혜에 감사함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수 있는 믿음의 종이 되게 인도 하여 주시옵소서
주어진 삶속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상을 이길수 있는 담대한 믿음이 복을 허락 하시사
주님의 이름으로 승리에 개가를 올릴수 있는 삶이되게 인도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 아 멘 –
2020/11/20 - 김 성 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