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34:8~21) 18~19 “서기관 사반이 또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제사장 힐기야가 내게 책을 주었나이다 하고
사반이 왕앞에서 그것을 읽으매 왕이 율법에 말을 듣자 곧 자기옷을 찢더라”
이스라엘 왕들이 하나님앞에 범죄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보이는 세상 우상신을 섬겼기 때문이 아닌가?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그은혜에 감사함으로 제사드렸던 하나님의 성전에
자신들이 만든 우상을 세워놓고 제사를 드리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이스라엘 백성 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을 할것이다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 것일수도 있으나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된 상태가 된 것이 더 큰 문제이며 아픔이 아닐까?
어느 육신의 부모가 있는데
그 부모는 그 자녀가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자랄 때
육신의 건강은 자연 서럽게 이루어지리라 교육을 하는데
그 자녀가 육신의 욕망으로 인하여 세상유혹에 빠져 들어 부모와 소식이 단절 되여갈 때
그 부모는 자녀의 정신세계가 무너지는 것을 바라보며
돌아 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것과 같은 모습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을 해본다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라면 누구나 우리들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믿고 있지 않는가?
또다시 이렇게 반문 해 본다
하나님의 성전인 성도의 마음속에는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가?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 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충만한가?
하나님의 종을 통해서나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요시아 왕같이 어둠에 있었던 자신을 발견해 갈 때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써 하나님의 나라안에 있는가?
아니면 세상 어둠에 노출 되여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곧 빛이다, 그러나 세상의 빛(육신의 욕망의빛)은 어둠이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멀리함으로 빛을 잃게 되었고
빛을 잃었음으로 말미암아 어둠에서 헤메고 있을 때
그 삶이 멸망의 길을 걷게 된 것이 아니었는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바라볼 때 하나님을 멀리 했을 때
그들은 어둠속(세상속)을 헤매며 멸망에 길을 걷게 되었고
자신들이 어둠속에 있음을 깨달아 알고 하나님을 찾을 때
(빛가운데로 나올때) 그들의 일상이 회복되는 것을 볼수 않지 않는가?
“요시야” 왕이 하나님의 성전에 있는 우상을 제거하고 빛가운데로 나아가는 길이
육신의 눈으로 보고 느낄수 있었던 양심의 눈이 있었던 것이라면
이제는 성령 하나님의 께서 보여 주시는 마음의 눈으로 보고 느끼며
자신의 옷을 찢고 하나님앞에 불복하는 모습이 자신의 마음을 찢고 회개하는 모습이 아닐까?
내 마음에 성전에는(우리들의 성전은) 말씀이 육신이 되여 오신 그빛이 들어오고 있는가?
육신의 욕망으로 세운 바벨탑이 그 성전안에 가득하여
복음의 빛이 들어온다 하여도 그 빛이 들어올수 있는길을 막고 있지는 않는가?
“요시야” 왕에게는 하나님의 성전에 안에 있는 것을 모두 부수고 철거 할 때
하나님께서 “힐기야” 선지자를 통해 말씀의 두루마리를 보게 하시므로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듣고 깨닫게 하시지 않았을까?
왜 하나님의 말씀을 빛이라 할까?
빛가운데서 있다는 것은 마음의 눈으로 볼수 있고 느낄수 있기 때문에
세상 어둠을 방어 할수 있는 기회를 얻을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말씀안에(빛가운데) 있는 사람은 그 영혼이 깨어 있어 죄를 죄로 깨달을수 있으나
육신의 욕망을(어둠) 따라 살아가는 삶은
욕망의 늪에서 죄를 죄로 깨닫지 못하는 것이 어둠안에 있는 삶이 아닐까?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은 백성은 그 나라안에서 그 나라 법을 잘 따르고 있는가?
아니면 세상 어둠에 노출 되여 있는가?
빛으로 충만 하여야할 하나님의 성전인 마음에 어둠으로 가득하지는 않는가?
지금 이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는 현실에서 한치 앞을 바라볼수 없는 세상이 아닌가?
영정으로 혼탁해지고 육신의 질병의 공포는 온 세상을 뒤덮고 있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질병에 공포를 느끼기도 하고
또 다른 한쪽에서는 나만 아니면 된다는 이기주의에 빠져 혼란을 가중 시키고 있다
신앙인으로써 역대상을 묵상 하며
그 시대에 일어나는 일들을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삶속에 접목을 시켜 본다
하나님의 형상 대로 지음 받은 인류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에덴에서 무엇을 하고 살았는가?
세상을 다스리 라는 권세를 권력을 무엇을 위해 사용을 했는가?
모든 인류가, 모든 자연과 함께, 더불어 살아갈 때
지으신이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분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것이 정상일것인데
육신의 욕망으로 말미암아 어둠에(세상에) 사로 잡힐 때
약육 강식 본능이 살아나서, 오직 자신만을 위한 바벨탑을 쌓을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공의와 정의와 진실이 무너지는 곳에는
세상 어둠으로 가득하게 되고
그 곳에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악으로 가득한 곳이 되지 않았는가?
그 마음밭에 빛으로 오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새롭게 거듭나기를 원하시는 것은 아닐까?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 밭이나, 사람이 파궤시켜 놓은 자연이나,
모던 것이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 시대나, 오늘 이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나,
하나님의 말씀이 빛으로 다가올 때 받아들수 있는 준비가 되여 있는가?
하나님을 믿되 자신에게 필요한 하나님을 찾고 믿으며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하나님을 볼수 있으나
마음으로 느낄수있는 하나님을 볼수가 없기에 진정한 회개도 없을 것이다
“요시야” 왕은 준비가 되어 있었고,
“힐기야” 를 통해 하나님 율법의 두루마리를 받았을 때
그 빛을 마음으로 받아 들일 수 있었고 그 빛을(말씀을) 마음으로 느낄 때
말씀의 거울 앞에서 자복하고 회개하며 하나님앞에 눈물의 회개기도를 드리지 않았을까?
이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말씀의 홍수 시대에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자신이 필요한 하나님 자신에게 맞는 하나님을 찾고 있기에
진정한 복음의 빛을 볼수가 없고 느낄수가 없기에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받기에 부족한 성도로 남아있는 것은 아닐까?
그 모습이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 모습은 아닐까?
언제부터인가? 눈물은 메말라 가고 진정한 회개가 없는 나에 모습은
내 마음속이 하나님의 성전인 것을 입술로는 고백을 하는데
빛으로 가득 해야할 성전안에 세상의 어둠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하나님아버지~~
이죄인이 말씀의 거울 앞에 설 때
그 빛을 통하여 자신의 내면세계를 바라볼수 있게 하시고
그 빛을 마음으로 느낄 때 순종할수 있는 믿음의 복을 종에게 허락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 아멘 –
2020/12/18
- 김 성 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