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1:1)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합 지방에 가서 거류 하였는데”
그 한 사람 “엘리멜렉”이 기근을 피해 약속의 땅을 떠나 세상(모합지방)속으로 들어가서
세상에서 죽고 “엘리멜렉”의 두 아들은 아버지가 죽고 난후에 아내를 맞이 했는데
그의 아내들이 이방 여인이 이었더라………
그 이방 여인을 통해 하나님의 역사,(이스라엘의 역사)
예수님의 계보를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나는 무엇을 볼수 있고 느낄수 있어나…….
비록 이방 여인으로 “아비멜렉” 가정에(나오미의) 며느리로 들어 왔으나
그 며느리(룻)의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
예수님의 계보가 이어져 가는 과정의 인물로 등장하고 있지 않는가?
1:16)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절”
사사들이 하나님의 나라를(이스라엘을) 치리한던 때에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 구별된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고 있어나 생각해 본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삿21:25)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백성들이라는 그들에게 하나님은 하나에 허울에 불과 했으며
자신의 소견에 옳은대로(사람의 생각대로) 행하는 삶을 살고 있지 않았는가?
즉 표면적으로는 하나님을 믿되
하나님의 말씀안에서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사람이나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순종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뜻과 같은 것이 아닐까?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에 한 사람이 그의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합 지방에 가서 거류 하였는데”
엘리멜렉이 살아가던 그때를 오늘을 살아가는 이 시대에 대입하며
그 인물에 나 자신을 대입하며 이 말씀을 묵상해 본다
내 삶에 기근이 온다면, 이땅에 기근이 다가온다면,
들려 오는 소리에 행복하게 살아갈수 있는 파라다이스가 있다고 말을 한다면
보이는 현상과 현실을 따라 세월에 흐름에 따라 흘러 가지 않을까?
사람은 모름지기 경제적 동물이라고도 하지 않는가?..........
엘리멜렉에게 있는 것과 없는 것이 무엇인가?
(엘리멜렉이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은 나의 왕이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엘리멜렉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백성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으나
그에게 없는것이 있다면 하나님에 대한 믿음(신뢰)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동행하시고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는 믿음이다
그 믿음이 있었다면 하나님앞에 물어 가로되 라는 수식어가 붙어 있어야 했을것이다
여기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하나님과의 대화속 신뢰이다 (기도 이다)
기근 때문에 먹거리를 찾아 나설 때
가족들 중에 누구 한 사람도 하나님앞에 기도 했다는 대목은 기록되여 있지 않다
그중에서 그 가정에 가장인 엘리멜렉에 대한 믿음이다
엘리멜렉은 그 가정에 가장이며 목자 장이 아니었는가.
가장이 죽고난후에 가정에 가장이 된 나오미를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된다
나는 룻기를 통해서 두가지 상황을 생각해 보게 된다
삶의 현실에서 하나님의 나라안에서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인 엘리멜렉이
믿음없는 자신의 행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떠나서 살아가는 삶과
“룻”기서 에서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서 “나오미”라는 여인의 믿음과
그 믿음의 사람, “나오미”를 통해서, 그 며느리 “룻”이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고
이방 여인인 그 며느리 “룻”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이루어져 가는가를 보게된다
사후의 세계는 엘리멜렉이 어떻게 되였는지 누구도 모르겠으나
그가 이땅에 살아 생전에 자신의 삶을 통해서 자신을 위해서나 타인을 위해서나
이땅에서 감당 했어야 할 자신의 일을 옳바르게 하지 못하고 간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오직 그가 남기고 간 것은
이땅에서 자신의 육신에 안위를 위해 살다가 간것만 기록되지 않았는가?
하나님께서는 이땅에 보내신 각 사람들에게 동기부여가 작든지, 큰든지 있었을 것이다
이 사실을 믿는 사람들은 곧 이것을 사명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는가
말씀안에서 그 사명을 잘 감당하는 사람은
그 삶속에서 이땅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룻”의 신실한 믿음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 “보아스”를 만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과정을 보게 되지 않는가?
(“보아스” 와 “룻”을 통해 “오벳을 낳게 하시고 그는 “다윗”의 할아버지가 아닌가? )(룻4:7)
“보아스”는 그 시대에 베들레헴이 기근이 왔을때도 하나님의 집에 머물러 있었고
기근의 때를 지나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살아가던 사람이 아닌가?
여기에서 의문점을 생각해 본다
의인 “보아스”와 “룻”과의 만남과 관계속에서
하나님의 나라 역사를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나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교훈은 무엇일까?
“보아스”는 베들레헴(하나님의집)에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사람이었고 “룻”은 이방 여인이다
왜? 이 두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를 기록하게 하시는 것을 보여 주시는 것일까?
나는 이렇게 생각해 본다
구원받은 백성 중에 “보아스”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당대에 의인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룻”은 이방 여인이지만
시 어머니 “나오미”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는 믿음안에서,
구원의 역사를 써 내려 가는 과정에서 한 획을 긋고 있는것을 바라보면서…….
이방 사람들에게도 복음의 소식을 듣고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구원의 길을 열어 두셨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사건이 아니 었는가 생각해 본다
룻기서 등장 인물들 중에 “엘리멜렉” “나오미” 그리고 그들의 두 아들 “말론”과 “기룐”
그리고 두 아들의 며느리 이름 ”오르바”와 “룻” 그리고 “보아스” 이다
등장 인물들에 삶의 내면을 바라보면서
각 사람들에 삶의 방식에, 내 삶을 대입해 볼 때
나의 삶이 그들 중에 어떤 사람과의 삶이 가장 닮아 있는가 생각해 본다 ……..
본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엘리멜렉”과 그 아들들
그리고 구원의 기회를 얻었으나, 그 기회를 놓친 며느리”오르바”
믿음을 회복하고 본향으로 돌아가는 “나오미” 그리고 복음을 듣고 은혜를 입은 “룻”
그리고 삶의 기근이나 어려움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 “보아스”는
“엘리멜렉”의 친족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해 본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던 “보아스” 에게
그 삶을 회복시켜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시 어머니 “나오미”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룻”에게
하나님께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볼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신뢰하며 순종하는 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며
또한 그들에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 사랑을 보게되었다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는 “룻”의 모습이 육신의 양식을 골라 주웠다면
“룻”을 또한 그 곳에서 “보아스”를 통해서 영에 양식도 이삭을 줍듯이 새겨 듣지 않았을까?
또한 나오미는 세상으로 나아갈때는
남편 엘리멜렉을 따라 그 마음 밭이 육신의 것으로 채우려 했으나(사람의 생각)
그 마음 밭을 육신의 욕망을 채울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모든 것을 비울 때
아버지 집을 바라보게 하시고
그 마음밭이 하나님을 향한 마음으로 채워질 때
회복되는 그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을 보게 된다
l 하나님아버지~~
부족한 종이 머무르고 살아가는 마음밭이 어디인지를
밝히 바라볼수 있는 믿음의 종이 되여
엘리멕렉 처럼 육신의 욕망을 따라 세상을 바라보지 않게 하시고
보아스와 같이 하나님의 나라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는 믿음의 종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 아버지~~~ 부족한 종의 마음이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면
나오미와 같이 들을 귀를 허락 하시사
하나님 아버지의 집을 찿아가는 마음밭이 되게 하시고
아버지의 말씀을 통해서 종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믿음의 종이 되게 하소서
하나님아버지~~~ 룻과 같이 만남의 축복을 귀하게 여기게 하시고
이제는 아무런 관계가 없어진 것 같은
나약한 시어머니 나오미를 섬기는 섬김을 본받아
하나님의 나라 백성을 섬길수 있는 믿음의 종이 되게 하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 아멘 -
2021/1/14 - 김 성 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