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14:15~24 (큰 잔치의 비유)
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주님께서는 복음의 잔치를 베풀고 누구를 제일 먼저 초대를 하셨을까?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형제들이 아니었을까?
생면부지에 사람들을 잔치집에 초대 하시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왜? 주님은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일까?
그 시대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다윗의 혈통을 통해 먼저는 유대인에 구원자로 오셨어
그들을 복음의 잔치 자리로 초대하시고 말씀을 선포 하셨으나
그들은 그들의 삶에 현실이 먼저가 되여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의 허울에 불과한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닌가?
거룩하게 옷을 차려 입고 회당에 높은 자리에 올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있다는 그들이
진정한 복음앞에서 자기유익을 지키기 위해 참 복음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았는가?
“그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 하니 그들이 엄중히 심판을 받으리라” (눅20:46)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하나님의 이름으로 화려하게 시작을 하였으나
하나님의 선한 청지기가 아니라,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은혜와 말씀을 뒷전에 두고 살았던 한사람
“사울”왕의 생전의 삶을 바라보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경고 하신 말씀이 있지 않는가?
“이스라엘의 딸들아 사울을 슬퍼하며 울지어다
그가 붉은 옷으로 너희에게 화려하게 입혔고 금 노리게로 너희 옷을 채웠도다” (삼하1:24)
세상과 더불어 살면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보다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현상과 현실앞에 먼저 현혹 되여 있다는 말씀은 아닐까?
하나님의 이름을 빙자하여 물질 만능주의 빠져 있는 현실과 무엇이 다를까? 생각해 본다
신약시대에 예수님께서 서기관들이나 제사장들에게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파 하셨으나 (복음의 잔치에 초대 하셨으나)
오지 않는 그들을 바라보시며 하시는 말씀이
오늘을 살아가는 구원 받은 백성들게 하시는 말씀이라 생각해볼때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라 생각해 볼때)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해 거룩하게 옷을 차려 입고
하나님의 백성들 위에서 굴림하며
자기 유익을 구하던 대 제사장이나 서기관들이
진정한 복음을 전하는 예수님 따를수가 없었고
자신들이 쌓아올린 바벨탑이 무너질까봐 결국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지않았는가?
그와 같은 현실이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삶속에서
하나님의 말씀보다 나에 안위를 먼저 생각한다면 그들과 다를것이 무엇인가?
삼상2장 에서 나오는 엘리 제사장과 그의 아들들의 삶을 돌아보자
특히 22절에서 36절 (엘리 집에 내린 저주) 사이에서 하시는 말씀속에서
나는 우리들은 삶속에서 무엇이 우선순위가 되여 있는지 깊이 생각해 볼 문제이다
또한 4장4절에서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전쟁을 할 때,
전쟁에서 지고 있었던 그들은 그때서야 하나님을 생각했을까?
그들은 그 아픔을 통해 하나님을 바라볼수있는 절호의 기회였을지도 모르겠는데
그들은 하나님앞에 자신들의 삶을 돌아보며 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생각한 것은 자신들이 필요 할 때 찾을수 있는 하나님 정도로 생각했을까?
하나님의 임재가 있은 하나님의 법궤가 자신들 곁에 없다고 생각 했을까?
그들은 하나님을… 하나님의 법궤를…
자신들이 사용할수 있는 하나의 소유물로 생각하고 전쟁터로 모셔 오는 것이 아니라
가져오게 하고, 가져 왔다가 적들에게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기고
그자리에서 죽임을 당하는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삼상4:11)………..
신약시대에 살아가던 제사장들이나 바리세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말씀이
오실 메시야를 기다리며 로마로부터 자신들을 구원해주실 구원주를 찾고 있었으나
진작 그들에게 찾아오신 구원주를 그들은 어떻게 했는가?
진정한 복음의 소식을 접할 때
그들은 마음의 찔림보다는 자신의 안위를 먼저 생각하고
자신들의 신녀로 만들어 놓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욱더 깊은 영적 맹인의 길로, 깊은 수렁으로 끌고 들어가
죄 없는 예수님을 내어주게 하고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게 하는 그들이
엘리 제사장의 아들과 무엇이 달랐을까?
그렇다면 오늘을 살아가는 나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들을 때,
참 복음의 진리가 내 마음을 두드릴 때,
말씀의 거울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뜻을 알기 원하며 기도 하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은혜를….
내가 필요할 때 응답하시는 하나님으로 알고 있지는 않는가?
내가 어려움이 있을 때, 내가 곤경에 처했을 때
내가 하나님을 찾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 하면
그때 마다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으로 알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았는가?
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이 말씀을 다시 한번더 깊이 묵상해 본다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은 누구일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입술로 고백하고 교회 안에 있으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하나님을 찾는 사람을 두고 하시는 말씀은 아닐까?
육신의 몸은 거룩하게 차려 입고, 직분으로 치장을 하고,
마음을 콩밭에 가있는 사람을 두고 하시는 말씀은 아닐까?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라는 말씀을 묵상하며
나는 그날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그 잔치 자리에
기쁨으로 참여 할수 있는 마음의(믿음) 준비가 된자 일까? 자신에게 반문해본다,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나는 이렇게 생각해 본다, 믿음이란?
내 삶속에서 내가 필요 할 때 하나님을 찾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믿음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내가 필요 할 때 나를 먼저 찾아오시고
나를 인도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것이다 생각한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는 말은 참 많이 듣고 아멘으로 고백을 한다
그러나 그 성전에 거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령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와도
삶의 현실에서 성령 하나님의 말씀과 세상 것을 가지고 저울질 하고 있지는 않는가?
나는 여기에서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던 두사람을 기억해 본다
룻기서에 나오는 “나오미”의 며느리 “오르바”와 “룻”의 선택 (룻1:14~16)
그 선택에서 세상으로 돌아간 오르바와 구원에 길로 들어선 룻을 보면서
나오미를 통해서 복음의 소식을 듣고 행동으로 옮긴 두사람의 결과에서
나는 무엇을 느낄수 있었나?
그러므로 찾아오시고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복음의 진리를 듣기 위해서는 그 영혼이 깨어 있어야 할것이다
“즉” 삶속에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모든 것 중에 우선 순위가 되어야 할것이라 생각을 해본다
l 하나님아버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입술로는 고백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그 삶속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내 삶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선순위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나의 인생길에서 나의 포도원을 만들어 주시고 즙짜는 틀까지 준비하시고
망대에 올라가 주인이 올때까지 잘지키고 관리하며 선한 청지기로 살라 하신 주님
그 망루의 자리가 기도의 자리라 생각합니다 (마가복음 12장)
그 망루에서 오직 주님만 생각하며
주님의 뜻을 기다리며 세상에 휩쓸리지 않게 기도 하는 종이 되게 하소서
이 부족한 종이 늘 깨어 있어서
성령 하나님의 부르심을 듣고 깨달을 수 있는 믿음의 종이 되게 인도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 아멘 –
2021/2/15 - 김 성 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