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서: 3:6~10 “모험으로 사는 인생”
알곡과 쭉정이를 골라내는 보아스의 타작 마당을 마음의 눈으로 상상을 해본다(룻3:2)
또 그 타작 마당에서 계시록에 나오는 말씀을 생각해 보며(계22:18.19)
나의 인생길 다 간후에
기업을 물을자의 은혜의 강을 건너 살아온 인생의 무게 추를 달아야 할
인생의 삶을 계수하는 타작 마당에 이르러 있을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 본다
하나님께서는 용서 받지 못할것이 없다 하시지만
나의 인생길 지나온 세월의 생명책에서는 어떤 것들이 기록되여 있을까?
하나님앞에서는 부끄럽고, 두려고 떨리는 일이 아닌가?
세상 죄로 말미암아 죄와 허물로 가득 하며
걸어온 인생길에서 할퀴고 찢긴 나에 삶의 모습을 바라볼 때
그 어느 누구도 나의 죄와 허물을 대신해 줄수 있는 일을 (기업을 물어 주기를)
자처하며 나서주지 않는 인생길에서
나를 만난 주시고 나의 기업을 물어주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를
나는 어떤 마음으로 그분의 말씀을 듣고 살아가고 있으며 그분 앞에 나아가고 있는가???
나는 아무 공로 없으나
하나님의 그 사랑과 그 은혜에 감사함으로 그 말씀을 따라 순종의 삶을 살아왔는가?
자신에게 반문 해 본다,
내가 살아온 삶은 그렇지 아니하지 않는가?
육신의 눈으로 보기 좋은 것이 있을 때
그것에 미혹 되어 머물러 앉아 세상에 취해 있기도 하고
세상에 취해 하나님의 은혜를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내 욕망대로 살아가다 호 되게 질책을 받을때도 있지 않았든가?
그 질책이, 그 야단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내가 느끼고 받아들일 수 있었던 일들이
나오미가 베들레헴 아버지 집을 향하여 기도하는 마음과 같았을까? 생각해 본다….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의 말을 듣고
“보아스”의 타작마당에서 “보아스”가 있는 곳까지 가기의 과정을 상상해 본다
두렵기도 하고, 떨리기도 하며 도둑으로 몰릴수도 있는 상황이 아니었을까?
여기에서 ”어머니가 죽으시는 곳에서 죽어 거기 묻힐것이라
내가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는 지라”(룻1:17)
“룻”이 시 어머니 “나오미”에게 고백했던 이 말을 기억하며
시어머니 “나오미”가 믿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 하는 믿음으로
시어머니 “나오미”의 말을 순종하며 담대히 나아가지 않았을까?
“룻”이 시 어머니에게 고백했던 그 말을 기억하며 타작 마당을 건너
“보아스”가 있는 곳을 향해 나아가는 그 순종의 믿음이 내 안에는 있는가?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게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을 인하여 믿으라”(요14:11)
내가 내 삶속에서 하나님앞에 나아갈 때
내 안에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했을 때 내가 하나님앞에 고백했던
그 고백을 기억하며 주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 하고
미혹의 강을 건너, 메마른 광야 같은 인생길에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안에서
담대 함으로 세상 가시밭 길을 건너 하나님 앞에 나아가고 있는가?
아니면 언제나 내가 필요에 따라 찾을수 있는 예수님,
그 예수님을 내 기준에 맞게 믿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았는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백성이(나 자신이) 이라면
예수그리도의 보혈의 피로 죄 씻음 받은 것을 믿는 믿음안에서
하나님앞에 나아가기까지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지뢰밭이 있지 않는가?
세상 유혹의 밭, 두렵고 무서운 밭, 육신의 눈으로 보기에 감당할수 없을 것 같은 밭,……
한걸음, 한걸음 그 세상의 강을 건너가는 발걸음을 옮길 때 마다
오직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 만을 의지하고 세상의 강을 건너 가야 할것이다.
내 자신의 가슴에 손을 대고 반문 해 본다….
나는 얼마나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이 세상길을 건너 하나님앞에 나아가고 있는가?
“내가 주릴 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 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 영접 하였고, 벗었을 때 입혔고,
병들었을 때 돌아 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돌아 보았느니라”(마25:35.36)
주님이 머무시는 곳에 내가 머무를 수 있고
주님이 아프실 때 내가 아파 할 수 있고 주님이 목마를때
함께 목말라 할수 있다면 나의 삶의 모습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붙쫓아 베들렘으로 가는 길이 이와 같은 고백의 삶이 아니었을까?
나의 믿음이 이와 같이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가 섬기는 하나님을 믿고
시어머니 “나오미”를 모시고 세상을 헤쳐 나겠다는 마음과 같은 믿음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그날까지
내 주님께서, 성령 하나님께서, 함께 동행하심을 믿고 섬기며
그 음성이 들려 올 때 순종하는 믿음으로
하늘의 소망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있다면……………
주님이 게시는 곳에 나도 있고 주님이 아파하실 때
그 아픔을 함께 느낄수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삶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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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 그 주님은 어디에 계셨을까?
성도 안에 계셨을까? 이방인들안에 계셨을까?
주님은 내안에 우리들이 믿음의 형제들이라는 성도들안에 계시지 않았을까?
나의 믿음이 “룻”이 시어머니“나오미”를 모시고 세상을 헤쳐 나가 듯
성령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헤쳐나간다면
내안에 게시는 성령 하나님을 볼수 있고 느낄수 있을 것이며
그 마음에 참 평안과 기쁨으로 가득한 삶을 살아갈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보아스”와 “룻”의 만남은 엘리멜렉의 가문의 대를 이어가는 계대 결혼이 아니라
엘리멜렉의 잘못으로 무너진 그 가문이 잃어버린 것을 찾아 주고
그 가정을 회복시켜 주는 그 가정의 기업을 물어주는 “룻”의 결혼이 아닌가?
하나님의 사랑을 잊어 버렸던 모합에서
베들레헴 아버지 집을 찾아온 “나오미”에게는 그 잃어버린 인생길을
그 며느리 “룻”을 통하여 회복 시켜 주시는 “룻”과 “보아스”의 결혼이 아닌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지만
세상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자신의 소견대로 살아가는 이스라엘에게
사사시대를 지나 그들이 원하는 인간 왕을 세워주었으나
그 왕이 하나님의 자리에서 굴림하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외곡 되게 인용을하며 자기 유익을 취하고 있을 때
시름에 잠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기업을 무를 자 예수그리도를 이땅에 보내 주신 것과 같은 맥락이 아닌가?
“룻”이 사랑하는 남편이 죽고 의지할 곳 없는 것 같은 망망대해와 같은 인생길에서
시어머니 “나오미”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고
그 사랑을 시어머니 “나오미” 에게 헌신적인 사랑으로 섬길 때
시어머니 “나오미”는 계대결혼을 통하여 “룻”의 삶이 보상 받기를 원했으나
하나님의 사랑을 잊지않고 하나님의 집으로 찾아온 “나오미”에게
하나님께서는 “룻”을 통하여 “보아스”와의 기업을 물자의 길을 택하게 하시고
결혼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닐까?
우리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구원 받은 백성이라면
그 구원의 역사가 예수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모신것이 계대 결혼처럼
구원의 역사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영원한 나라 하늘나라 소망을 주시기 위해
우리들에 기업을 물어주시는 예수그리도와의 영적결혼이 아닌가?
(구원 받은 백성이 예수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와의 영적인 결혼이며 그 결혼은
죄로 말미암아 사망가운데 있는 우리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고
이 땅에서는 하나님의 은혜안에서 살면서(우리들의 몸을 성전 삼고 함께 하시는 성령님과)
영원한 하늘나라 소망을 주시고 그 소망을 바라보며 살라는 약속의 증표가 아닌가.)
이 세상 생명이 끝날 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늘나라 소망을 바라본 성도의(나의) 삶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8:6)
신랑 되신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은
영의 생각으로 살아갈수 있는 길로 인도 함을 받는 삶이 될것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과정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으로 하나님앞에 나아갈수 은혜를 입었다면
예수그리스도의 그 은혜와 사랑을 잊지 말아야 할것이며
또한 성령 하나님게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될것이다
마음속 깊은곳에서 부르시는 성령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수 있는
깨어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할것이며
의의 길로 인도 하시는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할것이다
그 삶속에서 하나님의 그 은혜와 사랑을 어떻게 나누어야 할찌 (요한복음21:15~16)에서
우리들에 부탁하신 그 말씀 또한 잊지 말아야 할것이다
그것이 예수그리스도의 사랑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성도의 본분이 아닐까?
그 말씀을 잊지 않고 그 은혜안에 살아간다는 것은
우리들이 죄로 말마암아 죄와 사망가운데 있을 때 우리들의 기업을 물은자
신랑 되신 예수그리스도와 결혼을 하고 신부로써 본분을 다할 때
한없는 은혜와 축복의 삶을 살아갈수 있는 축복속에 살아가는 삶이 아닐까?
이 땅에서의 삶이 하늘의 복과 땅의 복을 누리며 하늘소망으로 충만할 때
그 마음이 언제나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으로 살수 있을것이라,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자,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약속의 말씀은 영원히 변하지 아니할 것이라는 말씀을 기억해 본다,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 줄지언정 꾸지 아니할것이요
여호와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로만 있고 아래로 있지 않게 하시리라
오직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지켜 행하며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 말씀을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섬기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신명기28:10~14)
하나님 아버지 ~~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된 이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망각하지 않게 하소서…….
신랑 되신 예수님과 동고 동락 하고 있음을 잊지 않게 하소서….
예수님의 그 은혜와 사랑안에 거하게 하소서
나에 몸을 성전 삼고 함께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수 있는 깨어 있는 자가 되게 하시고
그 말씀에 아멘으로 순종할수 있는 믿음의 복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 아 멘 - _
2021/8/10 - 김 성 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