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당신은 무엇으로 기뻐하는가?’라는 제목으로 베드로전서 말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성도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을 받아서 이 땅에서 생명의 씨앗인 말씀을 가지고 흩어져서 각자의 자리에서 생명의 열매를 맺어내고 주님이 계시는 하나님의 보좌를 향해서 하루하루 인내하며 살아가는 자들이다 하는 것을 우리가 지난 주일에 나눴습니다.
이렇게 성도의 정체성을 가지고 이 땅을 살아가는데 이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의 삶이 과연 꽃길을 걷는 것 같은 평안한 그런 삶일까요.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성공과 인정의 복, 물질의 축복을 받고 자녀가 형통케 되는 그런 복을 누리면서 성도가 살아가게 되는 것일까요?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 세상은 세속사회입니다. 뿐만 아니라 불신사회이기도 하고 돈을 신처럼 숭배하는 자본주의 사회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 주인으로 모시고 하나님을 소망으로 모시고 살아간다면 세상은 결코 우리를 편하게 놔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 세상은 사단이 악의 권세를 가지고 성도들을 공격하는 죄의 영향력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벧전 1:6)
이 세상을 살아갈 때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성도들도 여러 가지 시험을 받게 됩니다. 때문에 성도들도 근심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내가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손해를 당해야 되죠. 따돌림, 갈등 속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힘들어지고 근심을 하게 됩니다. 여러 가지 시험은 꼭 내가 죄를 지어서만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의 죄 때문에 어떤 면에서는 억울하게 손해나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가 있죠. 인류가 범한 모든 공통적인 죄 때문에 자연재해뿐만 아니라 질병의 고통 이런 모든 것들이 우리의 죄 때문에 당하는 고통이고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면서 구조적인 결핍으로 인해서 물질적인 고통을 당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성도들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아주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벧전 1:6)
베드로후서를 보면 이 잠깐의 의미는 하나님의 시간적인 개념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벧후 3:8)
이 세상에서 오늘 그 시험이 때로는 영원할 것 같기도 하고 그 시험이 긴 고통의 터널 속에 집어넣는 것 같지만 성도는 그 시험이 잠깐 우리에게 있는 고난처럼 그것을 이길 수 있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벧전 1:6)
즉 크게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은 그 근심을 잠깐으로 여길 수 있지만 그 근심을 기뻐할 수 없는 사람은 그것이 결코 잠깐일 수 없겠죠. 사도 베드로는 결론 부분에서 비슷한 말씀을 주십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벧전 5:10)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분명한 이유를 가진 것이 성도이기 때문에 성도에게는 여러 가지 시험이 우리가 세상을 살아갈 때 장애가 되는 것이 아니고 그 속에서 뚫고 지나갈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는 거죠. 그렇다면 그 기쁨이 뭐냐는 질문이 듭니다. 오늘 본문 3절부터 5절까지가 이 기쁨의 이유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벧전 1:3)
베드로전서 1장 1-2절 첫인사가 끝나자마자 헬라어 성경으로 보면 본문의 첫 단어(일성)가 “찬송하리로다”로 시작이 되는데 사도 베드로 안에서 튀어나오는 그 반응은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더라는 거예요.
사랑하는 성도님들 찬양은 내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기쁨이 터져 나오는 것이 찬송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택하셔서 이 세상에서 나에게 생명을 주시고 사명을 주시고 버려진 인생이 아니라 보내진 인생이고 그 하나님의 영원한 보좌를 향해 그 사명을 가지고 하나님께 도달할 수 있는 최종 목적지가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갖고 있기 때문에 지금 사도 베드로는 그 감격에 찬송을 먼저 하고 있다라는 거예요.
성도들의 삶에 찬송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내가 정말 하나님을 향해서 전심으로 찬양하며 나아갈 때 슬픔은 떠나가게 되어있습니다. 기쁨이 회복됩니다.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하나님께 송축합니다. 하나님을 경배합니다. 이것보다 이 세상에 영광스러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예배를 통해 찬양 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선포와 고백이 있을 때 그 찬양은 사단이 결코 빼앗아갈 수 없는 하나님께만 영광이 되어지는 능력의 찬양이 되는 줄 믿으시길 바랍니다. 정말 찬양 많이 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벧전1:3)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한이 없으신 긍휼을 베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긍휼은 헬라어로 엘레오스인데 히브리어로 바꾸면 우리가 너무 잘 아는 단어 “헤세드” 하나님께서 그 많으신 긍휼대로 우리에게 헤세드를 베풀어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의 확증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잠깐 근심하고 기뻐할 수 있는 이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세 가지로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합니다. 복음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벧전 1:3)
첫 번째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십자가 사건입니다. 세상의 죄의 권세와 사망의 권세와 더러움의 권세에 빠져서 이 죄에 빠져서 나오려고 하는데도 우리를 꽉 사로잡고 헤어 나올 수 없는 저와 여러분을 그 죄에서 끊어내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보내셔서 나의 모든 것을 대신 책임져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신 확증입니다.
두 번째는 “부활하게 하심으로” 이 세상 그 어떤 것도 죽음을 이기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를 사로잡고 힘들게 하는 것은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이고 염려와 두려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 죽음을 이기시고 삼 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 땅에서 생명의 능력을 갖고 또한 생명의 능력을 주실 수 있는 분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 첫 열매를 통해서 우리도 부활의 첫 열매에 참여하는 열매를 맺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요 10:10)
이 세상 어떤 것도 생명을 줄 수 없습니다. 생명은 오직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영생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생명을 가진 자입니다.
세 번째 이유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오늘 저와 여러분들에게 보내주신 성령님이 우리 안에 들어오셨을 때 우리는 새롭게 태어납니다. 성경은 거듭났다라고 말을 하죠. 예수 믿기 전에는 성령이 없었습니다. 이젠 내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죠. "좁은 길을 걸어도 우리가 밤낮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주의 영이 나와 함께함이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새로운 피조물이니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내 안에 성령은 살리는 영입니다. 회복시키는 영입니다. 마른 뼈다귀를 하나님의 군대로 만든 영이 성령입니다. 우리에게 삶의 의미를 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세요. 우리가 결코 헛되지 않는 삶을 살도록 이끌어주시는 성령님이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이 세 가지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확증이 분명할 때 우리 안에 산 소망이 생깁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벧전 1:3)
이 세상의 소망은 썩어지고 없어질 죽은 소망들입니다. 오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받은 소망은 살아있는 소망입니다. 산 소망이 있는 사람은 산 소망이 근심을 덮어버리기 때문에 잠깐이 될 수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산 소망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벧전 1:4)
유업은 구약적인 배경에서 땅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산 소망은 썩지 않고 쇠하지 않고 더럽지 않은 그 땅을 너희에게 주신다.”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 노예로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땅이 없죠. 하나님께서 그런 그들을 구원하셔서 광야를 지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세요.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을 주겠다.’ 그 땅을 향해서 간 거예요. 그리고 그 땅을 받았죠. 하나님의 땅은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땅입니다. 그 하늘의 땅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벧전 1:4)
그런데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은 썩고 더럽고 쇠하는 것들이 가득가득한 곳입니다. 죄로 가득한 땅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그 땅을 우리에게 지금 당장은 주실 수 없어요. 하나님께서 비록 그 땅은 주지 못하셨지만 저와 여러분들에게 이미 주신 게 있습니다. 보증입니다. 성령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은 땅이 너희 땅이 됐다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천군 천사와 함께 모든 것을 다 대동하시고 구름을 타시고 심판주로 이 땅에 오실 거예요. 오셔서 모든 더러운 것들을 다 불로 심판하시고 이 세상을 완전히 새롭게 깨끗하게 하시고 그날에 새 하늘과 새 땅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비하신 그 땅이 임하게 되는 거예요. 그날에 우리가 그 땅에서 살게 되는 거예요. 이것을 믿고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배 때마다 그 땅을 바라보며 그것을 대망했죠.
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2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계 21:1-2)
하나님은 박해를 받던 성도들에게 놀라운 환상을 보여주십니다. 너희들에게 이 땅이 있어. 새 나라가 올 거야.
12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벧후 3:12-13)
하나님의 날이 임하는 날이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는 날입니다. 그렇게 되어지는 날이 오는 것을 바라보고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보게 될 거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이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산 소망을 알고 그 소망을 간절히 대항하는 자들이 하는 기도가 주기도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 뜻이 이루어지도록 주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초대교회 성도들이 그렇게 기도할 때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고 하나님 나라의 역사와 하나님의 산 소망을 계속해서 우리에게 전파시켜 주셨다는 거예요.
사랑하는 성도님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산 소망을 가지고 베들레헴 마굿간에 태어나셔서 하나님 나라의 꿈을 가지고 나사렛에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산 소망이 열두 제자들에게 전달되었고 사도 바울에게 전달되었고 온 유럽과 오늘 우리에게까지 퍼졌단 말이에요. 놀랍지 않습니까. 이게 산 소망이예요. 지금 여러분들 안에 산 소망이 있습니다. 그 산 소망을 가지고 퍼뜨리셔야 됩니다. 먼저 자녀에게 전달이 되고 직장에서 이웃들에게 산 소망이 보여져야 합니다. 어떤 의미에서 오늘날 기독교 안에서 우리의 문제는 이 산 소망을 잃어버렸습니다. 베드로가 말합니다.
“너희의 소망은 살아있는 소망이다.”
사도 바울도 산 소망을 가지고 사니까 이런 고백이 나옵니다.
9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10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고후 6:9-10)
아멘.
사랑하는 성도님들 이 산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에게 썩지 않고 쇠하지 않고 더럽지 않은 이 산 소망을 주셨기에 우리는 그 소망을 가지고 이 땅에서 여러분의 각 가정에서 직장에서 학교에서 있는 곳에서 소망이 있는 자들로서 매일 주님을 찬양하면서 우리를 사로잡는 모든 근심과 걱정 모든 것들을 떨쳐내 버리고 주님이 주시는 그 생명력으로 주님 만나게 되시는 저와 여러분 될 수 있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