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행 3:1~10 (믿음과 하늘나라)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으로 올라 갈새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사람들이 메고 오니 이는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자라
불구자의 몸으로 성전에 들어 갈수 없어 성전 미문 에 앉아
세상을 바라보며 육신에 생명을 연명하기 위해 구걸해야 하는 불구자 걸인 ………
태어날 때부터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겨우 도달할 수 있는 성전 미문 앞이 아닌가?
오늘을 살아가는 나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로
주 예수그리스도에 이름으로 성전에 들어 갈수도 있고
하나님을 아버지 부르며 그 앞에 경배 드릴 수도 있지 않는가?
그러나 나의 모습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는 듯 한데
영적인 불구자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가?
그 삶의 행위가 자신의 육신의 욕망을 위해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모습이
성전 미문에 앉아 있는 불구자 걸인이 세상을 향해 구걸하는 모습과 어떤 점이 다른가?
가슴에 손을 대고 자신에게 반문해 본다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녀이며 하나님의 나라 백성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하나님의 나라 의로운 병기인가?
사행3:6~8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에 힘을 얻고 뛰어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베드로를 통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은혜를 입은 사람, 앉은뱅이……
그는 수 많은 사람들에 앞에서 구걸을 했던 그가…….
이제는 수많은 무리들이 줄을 지어 자신들의 죄를 용서 받기 원하며
자신을 위해 무엇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성전을 향해 들어가는 군중들 앞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이름으로 육신의 자유 함을 얻은 것과 함께
살아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뻐 뛰며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었다면…..
하나님의 은혜로 주 예수그리스에 이름으로 구원 받는 내가 영생을 맞보았다면
많은 무리들 앞에서 예수그리스도에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못하고 있다면…
그 믿음은 죽은 믿음이며…. 영적인 맹인 이며….
복음의 빛은 자신의 마음속에 깊이 묻어 두고…
자신이 만든 하나님을(자기 중심적인 믿음) 찬양하며 그 어둠 속에 갇혀….
살아있는 듯하나 죽은 자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주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에 피로 구속함을 입어 하나님의 백성 된 것과
어둠의 세상에서 죽음을 기다리던 자가
빛의 세계로 나와 새 생명을 얻었다는 것을 깨달아 알았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기뻐 뛰며 하나님을 찬송하며 그의 나라와 그의 뜻을 전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까?
나에게 이 기쁨이 없다면 나는 아직 미문에 앉아 있는 불구자 앉은뱅이와 무엇이 다른가?
내가 예수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이 백성이라고 입술로는 자랑하면서 이 행함이 없다면
자신에 육신의 욕망과 그 욕구에 굶주림을 해결하기 위해 구걸하는 것과 같이
자신의 육신에 욕망의 문제를 해결 받기 위해 성전 문을 드나드는 삯꾼과 같은 삶이 아닌가?
사행3:11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에 모이거늘…….
그 백성들이 성전에 들어갔을 때 무엇을 보고 나왔을까?
그들은 성전에 들어 갔으나 하나님은 만나지 못했을 것 같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하나님 속에 갇혀 자신의 것을 요구 했을 뿐
나에 작은 소견으로는 그들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듣지 못했을 것 같다
그래서 보이는 이적과 기적에 놀라 베드로와 요한이 있는 곳으로 몰려드는 것이 아닌가?
결과적으로는 그들은 살아있는 듯하나, 그 영혼은 잠자고 있었던 영혼들이 아닌가?
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예수그리스도에 이름으로 구원 받은 백성은
육신의 눈으로 바라보이는 것을 쫓아가는 믿음이 아니라
이제는 그의 몸이 성령님과 함께 하시는 성전인 것을 믿고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 아닌가?
요한 복음4: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 아버지께 예배 할 때가 이르리라
예배 할 때가 언제인가?
예수그리스도에 십자가 사랑으로 구원에 은혜를 입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자라면
언제나 그 영혼이 깨어 있어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그 삶이 예배의 삶이 아닐까?
사행 3:4 베드로와 요한이 더불어 주목하여 우리를 보라 하니
베드로와 요한이 가진 것이 무엇인가?
육신의 눈으로 바라볼 때
그들의 행색이 남루 하였을지라도 그들에게는 하늘나라 소망으로 가득하지 않았는가?
그 소망을 전하기 위해… 살아있으나 죽은 자와 같은 영혼들을 깨워주기 위해….
베드로와 요한은 주저함 없이 연약하고 나약한 자에게 다가 가고 있지 않는가?
요한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 그보다 큰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13절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와 요한은 주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생각하며 그 불구자를 바라보지 않았을까?
불구자 걸인은 남루한 행락객에서 무엇을 얻기를 원했을까?
그러나 그 불구자는 수 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면서
초라한 자신을 바라보고 외면 하며 지나 갔으나
남루한 행색을 한 여행자가 자기를 바라보며 무엇을 주고자 하고 있지 않는가?
그가 오직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만 바라보고 손 서래 을 쳤다면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
사행3:5절 그가 그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 보거늘 …..
아무도…. 불구자 이며 초라한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 주는 사람이 없었지만
남루한 행락객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말하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는가?
복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자와…. 복음을 전하는 자의 만남의 축복이다…..
하나님을 믿고 구원 받은 백성이라고 고백한 성도라면…..
베드로와 요한과 같이 우리들은
“보혜사” 성령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성전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믿음의 성도라면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과의 대화인 기도로 성숙하며
그 성숙함이 행함으로 이어질 때
믿음이 자라나며 완성 되여 가는 과정이 아닐까?
그 믿음이 성숙할 때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에 이름으로 선포 할 수 있지 않을까?
나에게도 그러한 믿음이 더욱더 성숙해져 갈수 있는 길은….
예수그리스도를 더욱더 깊이 알아갈 때,
나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 할 것이며….
그 충만함이 삶으로 나타나는 것이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구약 율법시대에 율법으로 정죄함을 받았다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은혜의 시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사랑으로 용서와 화해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롬3:9~18 우리는 다 죄 아래 있지 아니한가
우리들은 삶 속에서 자신의 환경이
어떤 처지에 놓여 있다 할지라도 비관하거나 낙담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하나님의 나라 일꾼들이다
예수그리스도에 보혈에 피로 구속에 은혜를 입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이다
우리들의 삶 속에서 예수그리스도에 증인에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하나님아버지~~ 부족한 종이 육신에 병이 들어 죽음을 기다려야 했던 상황에서
주님을 만나 병 고침을 받아 기뻐 뛰며 감사 찬송을 드렸던 그 기쁨이…
불구자 앉은뱅이가 누렸던 그 기쁨이…..
각자에게 주어진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겠으나
나에게는 누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죽인다 하면 아멘, 아멘 으로 충만했습니다.
주님 이 부족한 종이 그 주님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는 믿음의 종이 되게 하소서
주님 어떤 환경에서도 나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나를 부르시는 주님을 바라보게 하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간구 합니다 – 아멘 --
2019/9/2 - 김 성 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