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나는 영을 위해 살고 있는가?
육을 위해 살고 있는가?
육을 위해 산다는 것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일까?
육신의 욕망을 위해 오직 그 육신의 향락을 위해 달려가고 있다는 말씀이 아닌가?
그날 그날에 만족하기 위해 모든 정력을 쏟아 붓고 있는 삶이 아닐까?
육신의 욕망에 대한 희열을 느끼는 기쁨은 내일에 “비젼”이 없는 순간에 기쁨이다.
육신의 욕망은 한계가 있고 그 육신의 날도 한계가 있지 않는가?
그 끝날 에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육신의 욕망과 향락은 한계가 있지 않는가?
그러나 사람은 모름지기
본인이 입고 있는 육신의 옷이 쇠하여 가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고 있지 않는가?
그런 삶에 본을 보여 준 인물이 이 민족에 역사에는 백제 의자 왕이 있었고
후대에게 본이 되는 글 한 줄 남기지 못하고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고 죽어가지 않았는가?
성경에서는 보여 주는 대표적인 인물은 솔로몬 왕이 아닌가?
그 가 육신이 늙어 욕망의 한계를 깨달았을 때 쓴 시가 전도서가 아닌가?
전1: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육신이 늙어 욕망의 한계를 느낄 때
그 영혼은 보고 듣고 누렸던 것이 너무 많았으나
그가 누렸던 것이 아침 안개 같았으며
아침에 태양이 떠오르고 어둠이 걷히듯
그 마음에 육신에 욕망의 탐욕이 걷히고 영안이 열릴 때
아침 이슬 같이 사라질 것 들 뿐인 아니었는가?
육을 위해 달려온 그길 끝자락에서 영혼이 갈 곳을 바라보았는가?
준비 되지 않는 자에 삶을 바라보며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쓴 글이 아니었는가?
창조자가 말씀하시네
먼저 영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곳 육을 위해 살아 가는 것이라고
그 육신에게 맑은 영혼이 머무를 때
그 영혼이 머무르는 육신의 옷을 위해 옳은 길, 바른길로 인도 할 것이며
그 영혼으로 인하여 그 육신이 더욱더 빛난다고 하시지 않았는가?
그 영혼의 창조자가 누구인지 깨달아 알고,
그 창조주를 따라갈 때,
그 창조주가 그 영혼을 영원한 안식에 이를 때까지
인도자가 되시고 보호자가 되실 때
창조주의 지음 받은 목적 되로 창조주의 영광을 위하여….
그 영혼을 통하여 그 육신이 더욱더 빛 되게 소금 되게 그 삶이 빛 나는 것이 아닐까?
그 영혼이 창조주를 통하여 소망에 기쁨으로 충만할 때
그 육신이 영으로 인하여 없어질 것을 따라가는 욕망의 노예가 아니라
그 삶 속에서 쌓여지는 것이….
육신의 눈으로 보여지는 것이 부와 명예라면
육신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으로 쌓여지는 것이
은혜에 감사 함으로 쌓여지는 “덕”이 아닐까?
“덕” 위에 부와 명예가 쌓여진다면 이보다 좋을 수가 있을까?
육신의 주인이 영혼이라면 영혼은 육신의 노예가 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영혼이 육신의 노예가 될 때
그 영도 육도 바람 앞에 겨와 같은 존재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될 것이다
영혼이 주인의 뜻을 알지 못하고 그 육을 혹사하여 그 육신이 병들어 육신의 옷을 벗을 때
창조주가 그 영혼을 부른다면 누구를 위해 살았다고 할 수 있을까?
육신의 욕망을 채웠다 할까?
영혼의 향락을 위해 살았다 할까?
내일 없는 그 영혼의 삶은 그것이 끝이 아닐까?
오늘을 살아가는 나는 내일을 보지도 못했고 알 수도 없으나
온 곳이 있다면 가는 곳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보내신 이가 누구며 창조하신 이가 누구이지 바르게 아는 것이 복이 아닌가?
성도들에게는 베드로에 고백을 눈 여겨 보아야 할 것 같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 시니이다” (마태16:16)
하나님의 말씀은 천국 복음이요
나를 의의 길로 인도 하시는 구원에 말씀인 것을 내가 믿으며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따라가겠다고 고백하는,
신앙에 고백이 우리들에게 있어야 한다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과 같이
육신의 욕망을 해결해주는 신으로 알고 믿는 자들과
아니면 시대에 종교 지도자들 같이
예수그리스도를 “메시야”로 알듯하나 자신 앞에 있는 부와 명예를 놓칠까 봐 ….
“메시야”를 “메시야”로 바르게 전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 되게 전파한다면…..
그 말을 믿고 따라간다면…..
살아 있으나 죽은 자들과 같은 것이 아닐까?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올바르게 느끼고 있다면
그 입술에 베드로에 고백과 더불어 이와 같은 고백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르므로 우리가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롬14:7.8)
하나님 아버지~~ 주님을 따르던 무리들이
예수그리스도를 눈앞에 두고 도 “메이야”를 알지 못함 같이
내 영혼이 깨어 있지 못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바르게 깨닫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부족한 종이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나, 들을 때나,
성령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믿음의 종이 되게 인도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간구 합니다 - 아멘 –
2019/10/4 - 김 성 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