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5:21~24” “에녹”의 선택 – 하나님 과 동행
“가인”의 족보와 “셋”(아벨)의 족보 (창4:25 죽은 “아벨”의 대신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아들)
“가인”은 하나님께 쫓겨나서
에덴의 동쪽 “놋” 이라는 곳에서 정착한 인물이다(창4:16.17)
가인의 혈통의 삶은 하나님의 백성은 백성이나
그 삶이 자신들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삶이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재단을 쌓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위해 성을 쌓고 있다 (17절)
“가인” 족보 속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자신들의 나라를 만들고 가인이 그들 중에 왕 의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으며
4장 가인의 족보에서 “에녹”과 “라멕”(강한자. 파괴자. 압재자)이라는 인물의 이름과
5장 셋의 족보에서도 “에녹”과 “라멕”이라는 이름의 인물이 나오다
(에녹=바친다. 하나님의 뜻이 “에녹”과 같았다.
“에녹”의 삶은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았다)
한 시대에 살아온 “가인”의 족보 속에 “라멕”과 “셋”의 족보 속에 “에녹” 그 중에
한 인물 “라멕”은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는 자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신을 위해 자신의 나라를 만들고 왕이 되고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을 자신의 소유 물로 생각하며
살인을 너무 쉽게 저지르며 하나님 앞에 범죄 한 인물이다
자신의 조상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는 것과 같이
자신의 맘에 들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 없이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살아온 사람이다
또한 인물 “에녹”은 어떤 인물인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로써
하나님과 동행 하는 삶을 살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들림을 받은 인물이다
이 시대에 인간 세상 삶의 모습이 약육강식의 표본이 “라멕”과 같은 삶이 아닐까?
한 시대에 살면서 “라멕”의 삶의 모습은 육신의 눈으로 바라볼 때
“에녹”의 삶은 참 초라한 모습 보잘것없는 그 자체 이었을 것 같다.
그러나 그의 조상 “셋”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을 때(창4:25) 부터
그 후손들은 사람들이 보기에는 힘없는 민족 같이 보였으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그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믿음과
조상 아담이 하나님과 함께 동행 했던 그 “에덴” 동산을 사모 하지 않았을까?
그 중에서도 가장 신실하게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순종하는
“에녹”을 하나님께서는 사랑하시며 하늘 나라로 동행하시지 않았을까?
“가인”과 “아벨” 의 제사 중에 “아벨”의 재물과 제사를 받으신 것과
“라멕”과 “에녹” 의 삶을 비교해 볼 때
육신의 눈앞에 보이는 현상을 따라
자신의 유익을 위해 달려가는 “사울” 왕의 삶과
하나님의 축복으로 육신의 눈 앞에 펼쳐지는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다윗” 왕의 삶을 비교 해 볼 때
우리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대목이다
또한 한 일생을 두 가지 삶을 살아온 인물이 있었다면 ……사도 바울이 아닐까?
하나님을 자신의 생각대로 섬기는 것이 바른 줄 알았던 “사울”의 삶이 있었다면….
“다메섹” 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만난 후 또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삶…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와 사랑을 깨달아 알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감사함으로 섬기는 삶을 살아가는
또 다른 삶의 모습이 “바울 사도”의 삶이 아니었던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모두가 “사울” “다메섹” 길가에서 (사행9장) 예수님을
만나기 전 “사울”과 같은 삶을 살기를 원하고 있지는 않을까?
(나는 조심 서럽게 각자에게. 또 나에게 물어 보고 싶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고 있다
그 시대에 “사울”도 누구보다 열심 당원이요 “헬라인” 중에 “헬라인” 이었다
그러나 그 마음속에 자기 중심 적인 하나님을 믿고 있었고
하나님의 존재가 자신들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
자신들에게 맞는 하나님을 믿고 있었다
“사울”이 “다메섹”길에서 예수님을 만난 후
그의 삶이 사람들 위에서 굴림 하는 삶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섬김으로 살다 간 인물이다
오직 그 삶이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하고 있었다.
그 삶의 모습이 “아벨”과 같은 예배의 삶 “에녹”과 같은 예배의 삶이 아니었을까?
우리들은(나는) 고백한다….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기를 원한다고, 내(우리들) 안에서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지기를 원한다고, 고백하며 기도 하고 있지 않는가?
주님은 말씀하신다 (마태16:24)
(누구던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다라 오라)
하신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받기는 원하는데 십자는 외면하고 있지는 않는가?
화려하게 거룩하게 예수님의 형상을 닮기를 원하는데
“스데반”과 같이 “바울 사도”와 같이
예수 이름 때문에 고난 받거나 고통 받는 것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는가?
이것이 오늘 이 시대를 을 살아 가는 우리들의 삶의 모습이 아닌가?…
십자가을 외면한 신앙인 들에 삶의 모습이 세상에서 지탄 받을 모습이 아닐까?
누구에게 하는 말은 아니라
나 자신에게 반문 해 본다……………
나에 삶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예배의 삶을 살고 있는가?
또 한 그렇게 살기를 원하며 하나님 앞에 기도 하며 노력하고 있는가?
나의 삶 속에는 하늘의 소망으로 가득한 기쁨의 삶을 살고 있는가?
신년 들어 목사님을 통해서 주옥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나는 아멘, 아멘, 으로 고백은 쉽게 잘 했는데…….
나에 입술로는 “에녹” 같은 믿음의 은혜를 구하면서
나에 내면 속에는 “라맥” 같은 욕망에 사로 잡혀 있지는 않는가?
마태복음 23장에서
예수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세인들을 책망하심이 나에게 하시는 말씀은 아닐까?
말씀에 거울 앞에 서서 나 자신의 삶을 돌아봅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예수님 첫 사역지가 어디에서부터 시작 되었는가?
예수님은 복 있는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시기 전에 찾으신 곳이 어디에 계셨던가?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자들이 하늘의 소망을 바라보고 살아가던 곳 갈릴리 가 아닌가.
세상에서 부유하고 권세 있는 예루살렘 성전……..
세상 것으로 가득하고 욕망 늪에 있는 자들, 자신의 것으로 충만 자들에게는
하늘의 복을 담을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예수님께서 찾으신 곳은 그 삶이
곧 하늘의 소망으로 가득한 예배의 삶을 살기 원하는 곳을 찾으신 것이 아닐까?
하늘의 복…..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곳……지상 낙원이 있는 곳 …….
인간이 최초에 머물렀던 에덴 동산 그곳을 육신의 옷을 입고 간 사람은
“에녹” “엘리야” 두 인물은 육신은 땅에서 고통 받고 있었으나
그 마음이, 믿음이, 얼마나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 하시기에
“에덴” 동산을 하나님과 함께 거닐 수 있는 은혜를 입은 것일까?
l 하나님아버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자신을 위한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그 사랑 그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믿음의 종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l 하나님아버지~~ 부족한 종이 하나님 앞에 기도 할 때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 수 있는 지혜와
그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의 종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l 하나님아버지~~~
먼저 그의 나라와 의의 구할 수 있는 믿음의 종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간구 합니다 - 아멘 ---
2019.1.21. - 김 성 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