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4:1~15 “가안”과 “아벨”의 제사 중 선택 받은 제사란?
4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절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3장에서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후
4장에서 하나님과 관계회복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두시고 그 일을 행하게 하셨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아벨”과 그의 제물(제사)”만을 받으셨을까?
나는 창세기를 수없이 읽었으나
(히브리서 11장에서도 나는 시원한 답을 얻지 못했었다)
항상 물음표를 달아두고 넘어가야 했던 대목이었다.
그런데… 오늘 목사님 말씀을 통해서
궁금증을 풀 수 있어서 나에게는 너무나 은혜로운 시간이었다.
나는 첫 양의 피가 예수님의 첫 열매로 연결을 지어 나름대로 넘어가곤 했는데
가인의 제사를 받으시지 않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 할 수가 없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두 사람의 삶을 들여다 보며 두 분류의 삶을 그려 보게 하셨다
“가인”의 삶(카인) 의 삶과 “아벨”의 삶 속에서
왜? “아벨”과 그의 제물을 열납 하셨는지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같게 되었다
가인의 제사(예배) 중에
소산 중에 제일 좋은 것을 드렸다는 말씀이 있었다면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제일 좋은 것이 아니라 그것 중에서(삶 속에서) 일부를 드린 것이다
어떤 삶 속에서 자신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삶의 과정에서 어느 한 부분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제단을 쌓고 번제 을 드리는 삶……
나름대로 하나님의 자녀라 생각하며 열심히 살다가
자신의 필요에 의해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 하며 예배는 삶이 아니었을까?
그 모습의 삶이 가인의 삶 이었고 제사 이었다면
그 가인의 마음과 제사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 아니었을 것이다.
자기 중심 적인 삶에서 드리는 예배는
자신이 원하는 것 필요할 때 구하는 예배이며 기도가 아닐까?
5절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물을 받지 아니함 때문에 안색이 변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나에) 삶 속에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 한 듯 한데
그 기도에 응답이 없을 때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 보다는
하나님 앞에 “왜” 라는 수식어를 달고 되 묻고 있는 모습은 없는가?
“아벨”은 첫 새끼와 그 기름을 드렸다 함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허락하신 첫 소산물이다
첫 것을 얻은 기쁨이 얼마나 좋았을까?
“아벨”은 자신보다 먼저 그것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이 아닌가?
그의 삶 속에서 언제나 자기 중심적인 삶이 아니라
그 마음 속에 하나님 중심적인 삶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 대한 감사가 들어나는 제사(예배)가 아니었을까?
그 모습을 보신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과 제물을 받으신 것이 아니었을까?
“가인”과 “아벨”의 삶에서
주어진 현실에서 감사하는 삶은 누구인가?
창세기 수 많은 인물 등 중에
은혜에 감사하는 이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축복하심을 볼 수 있지 않는가?
하나님께서 인도하심을 믿으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을 채워주기를 원하는 예배의 삶은
감사가 없는 예배이며 요구를 충족하기 원하는 삶의 모습이 아닌가?
“에벤에셀”(여기까지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 사랑 그 은혜에 감사하며 드리는 삶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닌가?
l 하나님 아버지~~ “아벨”의 제사 와 같이 우리들의 삶을 통해서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께서 열납 하시는 예배의 삶이 되게 인도 하여 주시옵소서…..
l 하나님 아버지~~ 삶의 끝자락에 서는 그날 까지 순간순간마다
나에 고백이 “에벤에셀” 하나님이라 고백할 수 있는
믿음의 삶이 되게 인도 하여 주시옵소서
l 하나님아버지~~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과 은혜를 가슴속 깊이 간직하며
언제나 나와 함께 동행하시는 성령님의 임재 를 늘 느끼며
살아가는 삶이 되게 인도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간구 합니다 -- 아 멘 -
2019.1.14 - 김 성 하 --
[레위기 22:21] 만일 누구든지 서원한 것을 갚으려 하든지 자의로 예물을 드리려 하여 소나 양으로 화목제물을 여호와께 드리는 자는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아무 흠이 없는 온전한 것으로 할지니
[레위기 22:29] 너희가 여호와께 감사제물을 드리려거든 너희가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드릴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