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1: 1~18” “룻”의 선택” 제목: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1절 사사들이 치리 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뜻: 떡집 혹은 빵집이라 한다) 한 사람이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합” 지방에 가서 거류 하는데
2절 그 사람의 이름은 “엘리멜렉”(뜻: 하나님이 나의 왕이다)이요
그의 아내 이름은 “나오미”(뜻: 기쁨. 행복, ) 요
그의 두 아들의 이름은 “말론”과 기룐”(뜻: 연약한)이니 유다 “베들레헴”에
“에브랏” 사람이더라. 그들이 모합 지방에 들어가 거기 살더니
3절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은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
4절 그들은 “모합” 여자 중에서 그들의 아내를 맞이 하였는데
하나의 이름은”오르바”(뜻: 목. 고집)요 하나의 이름은 “룻”(뜻: 친구)이더라
그들이 거기서 거주 한지 십 년쯤에
5절 “말로”과“기룐” 두 사람이 다 죽고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의 뒤에 남았더라
“엘리멜렉”의 잘못된 선택과 그 잘못 선택된 것을 발견하고 돌아서는 “나오미” 와
잘못된 선택의 길에서 뒤 돌아서가는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가는 “룻” 의 선택
“나오미”는 “엘리멜렉”을 따라갈 때
그 자신에게는 영적인 기근이 있었으나 몰랐을 것이며
육 적으로는 전혀 기근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에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현상만 바라보고 남편 “엘리멜렉” 의 선택의 길을 따라간 것이 아닌가?
그 가정에 첫 단추(선택)는 어디에서부터 잘못 꿰어졌는가?
하나님을 자신의 주인, 왕으로 생각하며 살아가는 ‘엘리멜렉”이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그 땅에 기근이 오고 가족이 힘든 삶을 살아 간다면
더 좋은 삶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가장으로서 책임 있는 행동이 아니었을까?
그 가족의 책임자이며 우두머리라면 가족들에 행복을 책임질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의무를 충실하게 이행하는 것이 가장의 도리가 아닌가?
그렇다면 자신을 믿고 따르는 그 가족의 책임자가 “엘리멜렉” 자신 이라면
“엘리멜렉” 자신이 믿고 따라가는 대상은 누구인가?.
자신이 믿고 따라가야 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눈으로 보이는 현상만 바라보고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참 중요한 차이가 있다.
가족은 눈에 보이는 자신(“엘리멜렉”)을 보고 따라오지만
“엘리멜렉” 자신이 바라보아야 할 대상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 가족에 가장은 어떤 결정을 할 때.
눈 앞에 보이는 것을 바라보고 결정 할 것인가?
자신의 이름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결정을 해야 했을 것이다.
믿음의 사람(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더욱더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나는(우리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백성은 주인의 뜻을 알고 주인의 뜻을 따라야 할 것이다
“엘리멜렉”은 자신이 믿고 있었던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지 몰랐을까? 잊어 버렸을까?
그렇다면 나에(우리)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 어디에 계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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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땅에 기근이 오는 것과 동시에 “엘리멜렉” 마음(믿음)에 먼저 기근이 오지 않았을까?
하나님의 자녀로 오늘을 살아가는 나(우리)에 그 땅(삶에)기근이 왔다면
먼저 그 땅(마음 속에 믿음)에 기근이 오지 않았는가?
목사님의 말씀을 묵상 하며 나 자신이 걸어온 삶을 뒤돌아보며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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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는 남편과 함께 있을 때, 행복할 때, 삶의 어려움이 없을 때,
자신의 마음속에 기근(하나님을 떠나있음)을 몰랐던 “나오미”가
늦었지만 마음속에 기근을 발견하고 그 기근을 해결할 수 있는 근원을 보았고
그 근원지를 찾아가고자 하고 있지 않는가?
“나오미”가 육신의 눈으로 보았던 물은(육신을 행복하게 해 주는 물질은)
그 땅(마음)과 함께 더욱더 메말라가게 하는 것을 깨닫고
그 (마음)땅을 기름지게 할 수 있는 곳이 “베들레헴”(빵집) 인 것을 깨달아 알고
그 곳을 찾아 돌아 가는 “나오미”
그것을 발견한 “나오미”의 마음 밭에는 보이지 않는 생명 샘이 솟아 오르고
그 마음 밭에 기근을 해결하지 못하면
남편 과 두 아들과 같은 결과가 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닫지 않았는가?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모르고 영원히 죽어간 남편과 아들)
눈 앞에 보이는 모든 것을 내려 놓을 수 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뒤늦게나마 내면 세계를 볼 수 있었던 “나오미”
그는 이제 그 생명 샘에 근원을 찾아가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나오미” 의 며느리 “룻” 은 시어머니 “나오미”에게 서 무엇을 보았을까?
14절 그들이 소리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께 입을 맞추되
“룻”은 그을 붙좇았더라
16절 “룻”이 이르되 내게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다르지 말라고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머물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도시리니
17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 나도 죽어 거기 묻힐 것이라
내가 만일 죽는 일 외에 어머니를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내가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롬4: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 같으리라
말씀하신 대로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룻”의 믿음에서 나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또한 나에 삶 속에 기근이 왔을 때 나는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가?
나의 삶을 뒤돌아보며 생각해 보았지만
나는 언제나 보이는 것이 먼저이었고
그곳을 향해 달려가다 뒤돌 왔던 것을 잊을 수가 없고, 부인할 수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나는 오늘 이 자리에 서있지 않는가..
내 모습이 만신창이가 되여도 교회 강단 밑에서
하나님 앞에 원망과 하소연을 하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닌 그때를 생각하면
내 추하고 더러운 그 모습 그대로 주님을 찾았을 때
나를 반겨주시고 내게 새 힘을 주셨던 그때가
내가 주님을 만났고 생명수를 얻지 않았나 생각이 된다
그때 나는 왜 투정만 부렸지 감사를 몰랐을까?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철부지 같이 어린아이 같은 나를
세상 길 거리에서 방황하지 않게 하시고
그때 마다 교회로 인도 해주신 하나님께 무한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
“아브라함”이 기근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이나
“엘리멜렉”이 기근을 피해 모합으로 가는 것이나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는데 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은혜 을 입었고
“엘리멜렉”은 거기서 죽었을까?
룻기서 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분명 하나님의 사자가 찾아오지 않았을까?
“아브라함”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을 하다가도 하나님이 말씀이 들려 올 때마다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지 않았는가?
사사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과 같이, 솔로몬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와도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던 결과물들이 아닌가?
“나오미”는 그 삶 속에서 하나님의 소식을 듣고…….
6 절 여인이 모합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합” 지방에서 돌아 오려 하여
“나오미”는 들려오는 소리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누구나 다 들었을 소식인데
왜 “나오미”만 그 소리를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소리로 들었을까?
“아브라함”에게 찾아온 하나님의 소리를 “나오미”도 듣지 않았는가?
나는 나의 삶 속에서 “나오미”처럼 나를 찾아오신 성령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있으며
그 말씀 듣고 겸허하게 받아들이며 그 말씀 안에서
자신의 마음속에 기근을 치유해 주시기 위해 찾아 오신 하나님을…
나는 깨어있어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순종하는 믿음이 있는가?
바로 이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자가 복된 자이며
순종하는 자는 더욱더 귀하게 쓰임 받게 되는 사람이 아닐까?
나는 오늘 목사님 말씀을 듣고 생각해 본다
하나님의 말씀의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을 바라볼 때
불모지 같았던 나의 마음 밭이, 하나님에 은혜의 단비로 옥토 밭이 되여 있는가?
나 자신에게 주어진 두 번째 삶을(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져 왔음을 나는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나는 그 은혜에 얼마나 감사 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그 사랑을, 그 은혜를 몸소 나타내고 있으며, 나타내고자 애쓰고 있는가?
“나오미”처럼 하나님을 만났고 모합 에서 베들레헴을 향해 뒤 돌아선 것같이,
이제는 그 영안이”나오미”의 며느리 “룻”과 같이,
성령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어
주님 가신 그 길을 따라가겠다는 믿음의 고백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
이방여인 “룻”은 시어머니 통해서 하나님을 바라보았지만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베푸사 기업 물을 자(보아스)를 만나게 하시고
하나님의 생명 책에 기록되는 은혜를 입지 않았는가?
하나님아버지~~ 이 부족한 죄인, 말씀 안에서 또한 세상 삶 속에서
이제는 내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어
나에 기업 물을 자(내 영혼의 기업 물을 자)가
오직 그리스도예수 인 것을 확신하고 또 확신하며
나아갈 수 있는 믿음의 종이 되게 인도 하여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간구 합니다 - 아멘 –
2019/3/25 - 김 성 하 -
l 올바른 선택 아홉 번째 까지 말씀을 듣고
성경 속 인물들의 삶을 조명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게 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목사님께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