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14:1~9
3절 예수께서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를 하실 때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님에 머리에 부으니
4절 어떤 사람들이 화를 내어 서로 말하되 어찌하여 이 향유를 허비하느냐
나는 여기에서 등장 인물 세 사람(예수님, 한 여자, 어떤 사람) 중에서
각기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데
예수님은
아버지에 말씀에 순종하여 유월절 희생양이 되시기 위해 준비 하시는 중이시다
그럼 나머지 두 사람은 누구 어떤 사람인가?
두 사람모두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한 여인은 예수님께 은혜를 입은 사람이 아닐까?
또 한 사람은 예수님 제자들 중에 물질을 관리 하던 가롯 유다라고 한다.
공생에 기간 동안 예수님을 행적을 보고 소문을 듣고 은혜를 입은 사람과
한 사람은 부름을 받고 열두 제자들 중에 한 사람이 아닌가?
누가 예수님을 더 깊이 알 수 있었을까?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 내가 유월절 어린양이 된다는 말씀을 모두가 다 들었는데
그 마음에 와 닫는 느낌은 왜 이렇게도 차이가 날까?
한 여인의 “옥합에 나드향”
(나는 잘 모르지만 그 시대에 그 옥합에 향유는 값 비싼 것이며
조금씩, 조금씩 싸서 모아 필요 할 때 판다는 것이다.)
그 여인에 옥합에 든 향유는 그 여인에 재산 전부가 아니었을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을 액면 그대로 믿는 믿음이 그 여인에게 있기에
예수님께서 받은 그 은혜와 사랑을…. 구원에 약속을 믿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드려 주님 가시는 길을 준비하고 있지 않는가?
예수님의 제자 중 한 사람은 무엇을 보고 들었을까?
그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고 예수님의 이적과 기적을 보았으나
그에게는 이세상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었는가?
사망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다시 보리라 하였으나
그는 의심도 해보지 않고 주님을 버리고 있지 않는가?
육신의 욕망을, 자기유익을 채워주는 정도에 주님으로 밖에 보지 못하지 않았는가?
나는 하나님을 믿고,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에 이른 것을 믿는다면,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그 십자가의 길을 어떻게 바라보며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가?
내 삶의 모든 것(내 마음의 모든 것)이 주님을 향하고 있는가?
내 마음의 모든 것이 주님을 향할 때
왕 되신 주님을 알 수 있고 그 주님을 따라갈 때
의의길, 생명에 길,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알고 순종할 수 있는 길이 아닐까?
롬3:9~18 (다 죄 아래 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
그들의 눈앞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롬19~31 (하나님의 의) 31절 그른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 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21.22절 이제는 율법 외에 한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곧 예수그리스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들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의”는
차별 없이 모든 이에게 주어진다 하시는데 받을 수 있는 자는 누구 인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도 아니요,
하나님의 성전을 지키는 제사장도 아니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서기관도 아니다
그럼 누가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가 될까” (롬3:24)
주인을 알아보는 자이다
롬3:26) “곧 이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주님 앞에서 나드향 옥합 을 깨드린 여인처럼
주인을 알고 행함이 있는 믿음 안에서
(자기 유익을 구하는 행함이 아니라 은혜에 감사함으로 섬김이 있는 행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아버지….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의 공생에 기간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이적과 기적을 눈으로 보았으나
주님 잡히시는 날 밤에는 모두가 방관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는 말씀을 보고 듣고 되새기면서도
내 안에 거하시는 주님을…
나에 주인으로 생각하며 내 안에서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을 외면하며
방관자에 같은 삶을 살아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것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내 자신을 부인하고 내 십자가을 지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것임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왜 바울 사도가 날마다 죽어야 살수 있다 했는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습니다
주님 내가 날마다 말씀 앞에서 나를 발견 하고 죽지 아니하면(회개 하지 아니하면)
영생에 이를 수 없으니
부족한 죄인이 날마다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어지고
부활에 주님으로 성령님으로 오셨어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따라가는 삶이 되게 인도 하여 주시옵소서
마태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행함이 있는 믿음의 종으로 거듭나는 삶이 되게 인도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간구 합니다 - 아멘 –
2019/4/15 - 김 성 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