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16장 (1절 가증한 예루살렘) (23절 방자한 음녀 예루살렘)(44절 그 어머니에 그 딸)
(53절 소돔과 사마리아도 회복되리라) (63절 영원한 언약)
에스겔서 16장을 읽어 내려오면서 마음이 참 무거운 시간들이었다
또 비유의 말씀을 어떻게 이해 할 수 있는가?
하나님과 예루살렘 남 유다 에서 살고 있는 히브리 민족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과 나의 삶을 대입해 보면서 나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무엇일까?
두렵고 떨리는 마음과 더불어 하나님의 애절한 손길을 바라볼 수 있었다
주일 아침 어느 집사님과 대화 속에서
결혼이란 신랑 되신 예수님과 신실한 성도의 만남과 같다는 말씀을 하실 때
한주간 동안 에스겔서 을 보면서 애절한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신랑 되신 예수님께서 신부를 맞이 하기 위해
자신의 온 몸을 십자가에 던져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신부를 맞이할 준비를 하시고 신부를 맞이 하시지 않았는가?
그런데
그 신부가 신랑 되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아낌없이 부어주신 사랑을 가지고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들이 처음 하나님을 만났을 때 그들의 모습을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겔16:4 네가 난 것을 말하건대 네가 날 때에 네 배꼽의 줄을 자르지 아니하였고
너를 물로 씻어 정결하게 하지 아니하였고
네게 소금을 뿌리지 아니하였고 너를 강보로 싸지도 아니하였느니라
세상 마귀들에게 노출 되여,
헐벗고 굶주림에 허덕이는 여인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 여인을 거두어 아낌없는 사랑으로 좋은 것으로 입히고 먹였는데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먹이고 입혀주시고 누리게 하신 것을 가지고
창기와 같이 세상에 몸을 팔아 자신의 육신의 욕망을 채우는 것을 보시고
하시는 말씀이 15장에서 말씀하시는 열매 없는 포도 나무가 자신의 처지를 모르고
16장에서 행음 하는 여인에 비유를 가지고 말씀 하시고 있지 않는가?
겔16:18 또 네 수 놓은 옷을 그 우상에게 입히고, 나의 기름과 향을 그 앞에 베풀며,
19절 또 내가 네게 주어, 먹게 한 내 음식을, 곧 고운 밀가루와 기름과 꿀을,
네가 그 앞에 베풀어 향기를 삼았나니, 과연 그렇게 하였느니라
히브리민족이 예굽의 종살이에서 누구의 은혜로 이와 같은 은혜를 누리고 있는가?
그 은혜와 사랑을 누구를 대상으로 감사 해야 하며 경배를 드려야 하는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가지고,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것,
육신의 욕망을 따라 가며 사랑하고,
하나님을 떠나 살아간다는 것은, 다시 세상의 향락을 쫓는 것이며
세상 마귀들에게 노출되여 그들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닌가?
죄악으로 물들어 소망이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을 바라보시며
그 행위대로 갚아 그들이 잘못을 뉘우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고 하시지 않는가?
(죄로 말미암아 바벨론의 포로가 되여도 죄를 깨닫지 못하는 남 유다 백성들에게
에스겔 선지자를 통해 말씀 하시고 계시지 않는가?)
사람은 모름지기 의심이 많아 자신이 보는 것을 믿기를 원하고 확인 하기를 좋아하지 않는가?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라(히브리서11:1)”
나는 처음 이 말씀만을 떼어서 들을 때,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성경을 읽고 또 읽을 때, 마음의 문이 열리고 영에 눈이 열릴 때,
마음으로 느낄 수 있고 마음으로 믿을 수 있지 않았는가?
나는 내가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나에 모습은 어떠했는지 생각 해본다.
내가 예수님을 신실하게 믿는 성도 라면
예수님의 사랑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신랑 되신 예수님께서 나를 향한 사랑이 어떻게 이루어 졌는지 알고 있는가?
신랑 되신 예수님께서 나를 맞이 하시기 위해 어떤 값을 치르셨는지 알고 있는가?
세상마귀에게 노예가 되여 종 노릇 할 때
그 몸과 마음이 갈기갈기 찢겨지고 의지 할 곳 없는 상태로 살아 가지 않았는가?
순간 순간을 망각하기 위해 자신의 정신을 마취하기 위해 독주를 마셔야 했고
순간에 쾌락을 찾아 헤메이고 있었던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는가?
나는 그 삶 속에서 나는 무엇을 얻을 수 있었고 무엇에서 쉼을 얻었는가?
모든 것이 순간에 지나가는 환상으로 지나가는 것에 불과 하지 않았는가?
교만하고 거만하여, 한다는 말이 기껏 해야 후회하지 않는다는 말만 할 수 있지 않았는가?
잎만 무성한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와, 열매 없는 포도나무처럼
오직 자신 만을 위해 살았을 뿐, 타인을 생각할 겨를이 없는 인생이 아니었는가?
그 인생에 겨울이 올 때…..
의지 할 곳 없어 하늘만 바라본다면, 그보다 더 슬픈 인생이 있었을까?
예수님께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불쌍한 그 인생을 바라보시고,,,
구원할 길이 없어, 걸어가신 그 길이, 십자가에 사랑에 길이 아닌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지 않고는, 값을 치를 수 없는 죄인이 누구인가?
나 자신이 아니었는가?
그 큰 사랑에 빚을 진 나는,,, 주님을 어떻게 사랑해야 할까?
나는 그 주님을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가?
조건을 따져야 하고, 이유를 달아야 하고, 내 입맛에 맞아야 주님을 사랑할 수 있는가?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사랑에는, 조건이 없었다, 무조건 적인 사랑이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함도, 무조건 적인 사랑이어야 할 것이 아닌가?
그런 믿음의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을 할 때
그 사랑 안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신랑의 것은, 신부가, 모두다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축복이 아닌가?
세상 사람들의 신랑 신부도 이와 같은 사랑이 있을 때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의 꽃이 필까?
신부를 얻기 위해 완전히 죽을 수 있는 신랑의 사랑과
그 사랑에 감사하여 온전히 자신을 드려 사랑할 수 있는 신부의 사랑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의 꽃이 필까????
세상에 사랑은 보이는 사랑이요
하나님의 사랑은 육신의 눈으로 볼 수 없으나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고 느낄 수 있을 때
하나님의 더 큰 은혜와 사랑을 볼 수 있는 축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 세상에서는 삶 속의 축복과
훗날에는 하늘의 소망을 바라볼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 사랑이 아닌가?
요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하나님아버지 은혜와 사랑을 감사 드립니다
주님의 그 십자가에 사랑…..
나를 위해 아낌없이 내어 주신 주님의 그 사랑 그 은혜를
날마다다 묵상하며 감사 할 수 있는 믿음의 복을 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간구 합니다 – 아멘 -
2019/8/5 - 김 성 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