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4:1~11 “소명하는 예배”
영혼이 육신의 장막에 머무르고 있는 현상과 현실속에서
그 영혼이 깨어 있는 자는
하늘나라 소망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예배,
하나님의 그 사랑 그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는 예배,……..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 보석 같고
또 무지게가 있어 보좌에 둘렀는데 그 모양이 녹 보석 같더라”(계4:2.3)
다시 오실 메시야의 모습(예수님의 모습, 심판주로 오실 예수님)
구원주로 오신 어린양 예수님,
그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안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심판주로 오시는 예수님,
성도가 육신의 장막에서 머무는 영혼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하는 증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 때문에 고난이 있는가?
계시록을 기록한 사도요한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안에서
예수님을 증거하는 증인의 삶을 살고자 했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 육신의 장막을 벗어야 할 나이에
그의 삶은 밧모섬 에서 구리광산에서 노예와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는가?
그러나 유배지에서 살아가는 그 삶속에서
하나님께서 그 영을 맑게 하시고 장차 오실 메시야
장차 일어날 일을 보여 주시고 기록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고난당하는 형제들에게 소망을 바라보게 하시는 하나님….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고난이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안에서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아 고심하고 있는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내가 믿고
내가 그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이 내 안에 있다면
내 삶이 어떤 환경 어떤 처지에 놓인다 할지라도
내 영혼이 깨어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하늘나라 소망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종이 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그 영혼이 깨어 하늘나라 소망을 바라볼 수 있는 성도는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현상과 현실에서 낙담하거나 낙심하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나 자신에게 반문해 본다
나의 삶이 노 사도인 사도요한 보다 더 어려운 역경에 놓여 있다고 생각하는가?
자유로운 환경속에서, 배불리 먹을 수 있고, 따스한 옷을 입을 수 있고,
내가 마음 놓고 소리쳐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는 환경에 살고 있으나
그 사랑 그 은혜에 감사하기보다
내 삶의 현실이 우선순위가 되여
하나님 찬양하는 것은, 내 삶에 남은 시간 자투리 시간을 이용하고 있지는 않는가?
내 삶에 우선 순위가 내 영혼을 위한 것일까?
내 육신의 장막을 위한 것일까?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가 내 삶에 우선순위가 되지 못했음을 나는 회개합니다
내 육신의 장막은 제한된 시간속에서 살다가 종말을 맞이하지만
영의 세계는 영원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육신의 욕망에, 한계에 갇혀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지 못한다는 것은
그 영혼이 육신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 아닌가?
육신의 욕망에 사로 잡힌 자는
영에 세계를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은 영적 맹인이 되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육신의 장막을 위해 살아가는 육신의 욕망의 노예가 되여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육신의 장막이 낡아 떠나야 할 시기가 다가온 것을 느끼게 될 때
비로소 내 영혼이 무엇을 위해 살았는가 하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그때는 이미 인생의 해는 서산에 걸려 있고
그 영혼을 위해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없는 것이 아닌가?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1:2)
그러나 영혼이 깨어 있어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살아가는 성도는
성령 하나님께서 그 마음의 문을 두드릴 때
신앙에 양심을 따라 순종의 삶을 살아가는 성도는
어떤 환경 어떤 처지에 있다 할지라도
오실 메시야 를 간절이 소망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으리라 믿습니다
사도 요한이 계시록을 기록하던 시기에는 로마 황제가 육신으로 탄압 하는 시대 였다면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육신은 자유를 누리는 듯 하나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현상과 현실에서 수많은 유혹이 도사리고 있는 현실에서
세상 공중 권세와 영적인 싸움을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닌가?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언을 하였도다”(딤전6:12)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4:7)
바울 사도의 고백속에서 나는 무엇을 생각 할 수 있는가?
네 삶속에서 내 뜻대로(육신의 욕망대로)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이 나아가 기도하는 성도는 하늘나라 소망을 바라보게 되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하여
자신의 주장을 더욱더 갈망하는 자는
그 영이 더욱더 깊은 수렁, 어둠의 영들에게 사로 잡히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보이는 현상과 현실에서 절망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사람은 참소망의 빛을 볼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그르므로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는 (나는)
늘 깨어 기도하며,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묵상하며
영문 밖에서 나를 부르시는
성령 하나님의 음성에(신앙에 양심에) 귀 기울이는 성도가 되여
육신의 눈으로 보이는 것에 미혹 되여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도록
내 마음에 참소망에 닷 을 올리고 살아가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는 다짐을 해 봅니다
하나님 아버지~~ 은혜와 사랑을 감사드립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부족한 종의 마음의 문을 두드릴 때
부족한 종에 영혼이 깨어 있어
신앙에 양심에 따라 순종의 삶을 살아가는 믿음의 종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종의 삶이
하나님을 경배하며 찬양하는 예배의 삶이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아 멘 –
2024/12/25 - 김 성 하 -